▲홍성표 대덕대 전 총장 |
어디 그뿐인가. 건강에 나쁘다는 그림과 경고 문구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담뱃값 인상의 대전제가 국민건강인데 경고 그림을 넣지 말자는 이야기는 무슨 엉뚱한 짓인가. 경고성 그림은 더욱 혐오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청소년들이 반응한다. 더욱 강화해야 할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메시지이기에 강할수록 좋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한쪽도 아니고 양면 다 넣지 말자고 한다. 경우가 없다. 그래서 로비 때문이라는 의심도 받는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정치꾼은 표만 생각하고 정치인은 국민만을 바라본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그러니 “국민 건강을 챙겨주려 했을 리 만무하고 세금을 늘리려는 꼼수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라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는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남자들 대부분이 군대에 가서 담배를 배운다고 하는데 입에 대지도 않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담배심부름의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군에서는 3일에 한 갑씩 받았다. 피우지 않는 덕에 야간 보초를 덜 서기도 했다. “작은 애비한테 담배 몇 개비 얻어 오너라.” 눈 비비고 일어나자마자 아래채에 사시는 작은아버지 댁에 가서 담배를 얻어오는 심부름으로 하루가 시작되기 일쑤였다. 우선 당신 담배 갑에 몇 개비 들어있나 보시고 형님에게 보낼 양을 결정하시는 것 같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 마음에 '한 갑쯤 사 드리면 좋을 텐데' 하는 서운한 마음과 '안 피우시면 안 되나' 하는 안타까운 두 생각이 함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밭둑에 담배를 몇 그루 표 나지 않게 심어 자급자족하시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전매품이라 단속의 대상이었을 텐데 위험을 불사하시고 수확기에 잎을 따서 처마 밑이나 헛간, 심지어 방에서까지 말리고 펴기를 몇 차례 반복하시고 썰어서 손질을 하신 후 얇은 종이에 말거나 담뱃대에 넣어 피우시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얼마 후 봉지담배가 시중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선친께서 위장 절제술을 받으시고 의사와 아들의 권유로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다. 건강을 회복하시고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애비야! 나 담배 좀 피우면 안 될까?” 절절히 애절함이 배어있는 청인지라 자식 노릇 한답시고 하루에 6~7개비씩만 피우시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보루 씩 사다 드렸다. 절대량이 부족하셨는지 손끝이 노랗게 되도록 피우셨다. 꽁초도 남기지 않으신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웠는지 누이들이 뵈러 올 때마다 채워놓는 것 같았다. 결국 담배가 치명적인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매몰차게 말리지 못한 후회가 회한으로 남아있다.
금연의 폐해에 대한 내 말을 듣고 애연가 한사람이 '흡연예찬'에 대한 메일을 한 통 보내왔다. 정지용은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라 했고, 김동인은 '담배는 백리(百利)라면서 흡연이 더울 때는 양미를, 추울 때는 온미(溫味)를 주고, 우중(雨中)에 떠오르는 담배 연기는 시인에게 시를 줄 것이며, 암중(暗中) 흡연 공상가(空想家)에게 철리(哲理)를 준다. ' 그리고 '식후(食後), 용변 시, 기상 시(起床時)의 제일미(第一味) 쯤은 상식적이며 거듭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심지어 '인체에 좋은 영향을 줘 수명에 까지 좋은 결과를 줄 터이니 예찬 할 일이지 금할 일은 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황순원도 '슬픈 일을 태우려 담배를 뻐끔여 온 때문에 이젠 담뱃대만 물면 슬픈 일이 반짝 인다'고 했다. 그러하듯 '흡연은 막힌 생각을 틔워주고, 근심을 가라앉히고 권태를 달래주며 피곤을 덜어준다'고도 했다.
이들이 살고 간 세상을 현재의 과학이나 의학적으로 대비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만 '저가담배' 나 경고 그림의 혐오성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보다 차라리 선배들의 이러한 흡연 예찬론이 있었다고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홍성표 대덕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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