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섭 서산시장 |
지난 설 연휴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역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정조는 경연 중에 신하들에게 '중용' 23장을 외울 수 있는지 묻는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자 상책으로 하여금 그 내용을 읊도록 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나직이 읊조리는 상책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했다.
영화를 보면서 중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작금의 불균형적인 중앙과 지방 간 세원배분 문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을 표방하고 출범한 지방자치가 30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도 한 몫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세와 지방세 간 세원배분 비율은 대략 8대 2로 중앙과 지방이 절대적인 불평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주민생활이나 복지부분 민원 해결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는 1년 내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서산시 대산읍에 소재한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지난 30여년간 국가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지만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미미한 수준이다. 공단주변은 대기·수질·토양의 오염은 물론 많은 물동량으로 인한 도로파손과 빈번한 교통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의 마련과 기반시설에 대한 보수·확충은 제때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대산공단에서 1년간 납부하는 국세는 3조8천억원에 달하지만 지방세는 이의 1% 남짓인 400억원에 불과하다.
OECD 선진국들과 비교해볼 때 미국, 일본 등은 중앙과 지방간 세원배분비율이 6:4이고 독일의 경우는 5:5이다. 그래서 우리시는 울산광역시 남구, 전라남도 여수시 등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석유화학단지에서 거둬들인 국세의 10%이상을 해당지자체에 환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발전소 주변지역의 경우는 지난 1989년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지역개발과 주민복리 증진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이 체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반면, 같은 기피시설인 석유화학단지 주변지역은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되고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에서의 과감한 권력이양과 국세의 지방세 환원을 포함한 세원구조의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용은 지나치게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떳떳하며 흔들림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올바른 기준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중간'이라는 말과는 다른 의미인 중용은 단순히 가운데나 반의 의미가 아니다. 그 상황과 위치에 맞는 '올곧음'과 '바름' 그리고 '배려'를 뜻한다. 중간인 50%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그럴만한 권리를 가진 정당한 주체로서 합리적인 기준의 재설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라 지방이 더욱 소외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사무이양뿐만 아니라 조화로운 재원이전도 함께 이루어져 주민 복지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국가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중용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난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이완섭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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