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박찬인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다. 교단에서 학생들의 가르침에 앞장서고 있는 박 교수에게 무거운 임무가 떨어졌다. 바로 대전지역 문화예술행정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격인 '대전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 것. “아직 잘 모르는 만큼 많이 배우겠다”며 겸허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대전시민 중심의 문화재단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박 교수. 지난달 24일 오전 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 그의 대전문화재단 운영에 대한 청사진과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들을 들어봤다.
-지역 문화예술행정을 총괄하는 대전문화재단의 4번째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됐는데 소감은 어떠신가요.
▲안식년을 누리고 싶어서 대전문화재단을 한번 이끌어 보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없었습니다. 그동안 쉬지 못해서 휴식도 하고 여유도 찾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 많은 분들께서 문화재단 대표이사에 도전해보길 강력히 권유하셨습니다. 이 분들은 “대전에서 크고 자란 사람들이 대전을 잘 아는 만큼 나서서 지켜야 한다”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제 자신이 적임자는 아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지원했고 취임하게 돼 매우 기쁩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과 괴리감이 많습니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대전문화재단의 책임이 막중한데 앞으로 2년간 운영방향은 어떻게 세우고 계신지요.
▲오는 10일 정식으로 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하는 만큼 지금은 큰 그림만 그리고 있습니다. 일선에서 열심히 해주고 있는 직원들의 생각을 존중할 계획입니다. 전임 대표께서 잘하신 것은 계승·발전토록 하고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그렇지만 6년차에 접어드는 문화재단이 시민들 사이에서 아직 뿌리를 못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임기 2년 동안 문화재단이 나아갈 방향을 시민중심으로 잡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대전문화재단 운영방향을 크게 보고 있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면요.
▲시민중심의 문화재단 정착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세부적으로는 몇 가지 제도화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역 문화계 일부에서 문화재단이 예산을 나눠주고 관리하면서 소위 '갑질'한다는 불만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지원을 받지 못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푸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문화재단은 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을 섬기고 모시는 서번트 기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신문고' 같은 장치를 만들어 '갑질' 느낌이 나는 것에 대해 신고할 수 있게끔 제도화하겠습니다. 또 지원금을 받게 된다고 해도 여러 가지 서류 처리라던가 행정절차 등으로 인해 힘들다고 호소하는 지역 예술인들의 하소연을 많이 들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은 서류작성이 아닌 자신들의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할 일입니다. 이를 위해 서류 작성이나 정산 등을 담당하는 직원을 채용하거나 배치할 생각입니다.
-대전문화재단의 주요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불만도 많은데요,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문화라는 것은 굉장히 큰 분야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겪는 모든 것이 문화입니다. 그런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만 문화인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고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음에도 말이죠. 문화재단의 경우 정확하진 않지만 기득권자들이 너무 많은 자금을 얻어가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새로 시작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생활 예술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쪽을 폭넓게 지원해 그야말로 더 많은 시민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물론 예산이 증액되지 않는 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돼 있습니다.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면 됩니다. 자금을 받았으면 A·B·C·D 등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해 점수를 토대로 다음 사업의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예술을 하시는 분들이 반발하실 수도 있지만 사업이 투명화된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박 교수님에 대해 지역 문화계 전반에서 의외의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많고 문화예술분야 전문성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문화는 굉장히 큰 분야입니다. 예술은 문화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프랑스 공부를 하면서 언어는 물론 문화에도 심취했습니다. 이에 대해 강의를 했고 프랑스 문화예술학회 활동도 했습니다.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문화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문학도 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요. 저는 이응노미술관의 운영위원을 4년간 지냈고 대전컨벤션센터 자문위원, 충남대 인문대학장, 충남대 아시아지역연구소장, 전국 국공립대학 인문대학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또 대전지역정책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지역 문화정책 방향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수필집도 써냈죠. 저의 행정능력에 대해서도 의문들이 많으신것 같은데 지난 2009년 세계 70여개국 1000여명이 참석한 국제아시아학자대회를 대학의 도움 없이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그래서 감히 자신있게 잘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얼마 전 대전예총 신임 회장에 최영란 목원대 교수님이 선출됐습니다. 지역 문화예술을 이끌고 가려면 예총과의 협력이 필요한데 앞으로 관계 구축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대전예술가의 집 아래 위층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게 된 만큼 자주 소통하고 친하게 지낼 생각입니다. 대전예총에서 주관하던 여러 사업들이 문화재단으로 넘어와 상실감이 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전예총이 갖고 있던 기존 사업들을 문화재단이 꼭 해야 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대전예총이 그대로 사업을 추진하고 문화재단도 원래 하던 사업만 진행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취임 후 직원들과 심사숙고해 결정할 계획입니다. 물론 대전예총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대표하는 조직인 만큼 최대한 협력하고 지원할 생각입니다.
-올해 지역 축제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됐는데요, 대전을 대표하는 '문화축제'가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축제와 문화'라는 수업을 진행해온 만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지역에 비슷비슷한 축제들이 많았습니다.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구석에서 음식 팔고, 노래 부르고 등등 내용은 거의 동일합니다. 문화가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목적이 되는 축제가 돼야 합니다. 와인축제보다는 차라리 '전' 축제를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대전'이라는 도시명과 '전'이라는 음식을 함께 묶은 '대전축제'를 지역 곳곳의 전통시장에서 진행하는 것이지요. 한 곳에서 열리지 않고 각 지역 전통시장에서 열리는 만큼 대전 전체가 들썩일 수 있습니다. 또 시민들이 좋아하는 막걸리와 전이 가지각색이어서 전통시장의 여러 가게들이 붐빌 것입니다. 전통시장에 지붕을 씌웠다고 시민들이 오지 않습니다. 하드웨어보다 시민들이 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전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하시면 현재 충남대 교수직은 휴직하시는지요.
▲사실 파견제와 휴직제 등 2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그래도 파견보다는 휴직을 하고 저에게 맡겨진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방학 기간 중 저의 수업을 듣기 위해 수강 신청한 학생들에게는 매우 미안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해줄 예정입니다. 제가 2년 동안 대전시민 중심의 대전문화재단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잘 인지시켜야지요(웃음).
▲박찬인 대표는= 1958년 대전에서 출생.대전고와 충남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를 받은 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92년부터 지금까지 충남대 인문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충남대 아시아지역연구소 소장과 대전충남생명의숲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다.
대담=한성일 취재 3부장(부국장)
정리=송익준·사진=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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