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영 대전대화초 교감 |
동네 아저씨들이 다닥다닥 매달린 복숭아 열매 솎아내기를 한 날이면 아이들은 하얀 솜털이 가득한 풋복숭아 열매를 주워오고는 했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박박 문질러 씻은 복숭아 열매는 사카린과 만나 아이들의 빈속을 채워주는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새콤달콤한 맛에 이끌려 기분 좋게 입 안으로 넣었지만 덜 익은 풋복숭아 열매는 심심치 않게 아이들의 배앓이를 일으켰다.
작고 푸르스름한 복숭아는 머지않아 충분한 햇빛과 양분을 받으며 진한 향과 달콤한 맛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겠지만 풋복숭아만 먹어본 사람은 시고 떨떠름한 것이 복숭아 본래의 맛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당장 입의 즐거움을 위해 기다림 뒤에 오는 탐스럽고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덜 익은 과일을 입에 넣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학교 주변에 있는 대전천은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가을이면 울긋불긋 코스모스가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찬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봄, 대전천변을 가다가 선명하게 분홍빛을 머금고 피어 있는 청초한 코스모스 몇 송이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코스모스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무렵에 피는데 왜 이렇게 빨리 피었지? 주변에 있는 초록빛 친구들과는 달리 먼저 피어버린 몇 안 되는 코스모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분명 받았겠지만 가을까지 고운 빛을 간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같은 이름을 가진 꽃씨를 심어도 먼저 싹을 틔우는 것이 있고,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시기가 제각각인 꽃이 아닐까? 일찍 핀 꽃은 한 순간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을 받았겠지만 다른 꽃들이 환하게 고운 빛을 발하고 있을 때 그 꽃은 이미 시들고 있다. 다른 꽃들은 벌써 피었는데 얘는 왜 아직 꽃봉오리조차 맺지 못하는 것이지? 조바심을 내는 어른들이 많다. 건강이 먼저다, 친구와 잘 지내는 것이 우선이지 하면서도 그것이 별 문제가 없다싶으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좀 더 앞으로, 좀 더 빨리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아이의 속도와 상관없이 밀고 끌어당긴다. 이 때 덜 익은 풋복숭아를 먹고 배탈이 나 고생을 한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이맘 때쯤이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반 배치고사 준비로 가장 바쁠 때다. 학기 중 시간이 없어 못했던 책도 읽고, 봉사활동이며 진로탐색 등 여유를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교육과정 내용을 단단하게 다지며 배치고사를 준비하기 보다는 상급학교에 가서 배울 내용이 문제로 나오지는 않을까, 학교 진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는 있을까 싶어 미리 배우고 익히느라 학부모들의 지갑은 계속 열린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이런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학부모 역시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림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비닐하우스, 유리온실이 일반화되고 생명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온갖 나물이며 과일, 채소가 계절에 상관없이 나오지만 제철에 먹는 맛과 영양에 비하면 밋밋하기만 하다. 지금 당신 옆에 스스로를 늦되다고 생각하며 고개 숙인 아이가 있다면
“얘야!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지고, 늦게 피는 꽃은 늦게 진단다”라는 말과 함께 등 한 번 토닥거려주면 어떨까?
조혜영 대전대화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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