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어린 나이에 엄마가 시키는대로 무용을 시작했던 그녀는 이제 대전예술계를 책임지는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바로 최영란(56) 목원대 스포츠건강관리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그녀가 꿈꾸고 보여주고 싶은 무용인으로서의 무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그녀에겐 더욱 중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다음달 1일부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전시연합회(이하 대전예총) 신임 회장으로서 지역 문화예술계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대전예총 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이란 타이틀을 갖게 된 최 신임 회장은 지난 10일 당선인사에서 대전예총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긍심과 위상을 살리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10일 저녁 대흥동 대전예술회관 인근 식당에서 최 회장을 만나 당선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대전예총 운영 방침과 지역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대전예총 사상 첫 여성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는데 소감은 어떠신지요?
▲특별히 대전예총회장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된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출마를 권유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저 역시 갈수록 추락하는 대전예총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위상과 위치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번 선거의 출마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한번 해보자'는 생각 하나로 도전을 결심했고, 두 분의 후보자분들과 비방전이 아닌, 깨끗한 클린선거로 페어플레이해서 당선됐기에 기쁨이 큽니다. 여성의 섬세함과 따뜻함, 그리고 제가 가진 장점중 하나인 불같은 추진력으로 대전예총의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고 싶습니다.
-출마의 변에서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유명무실해진 한밭문화제의 부활을 꼽으셨는데, 한밭문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대전을 대표하는 축제로 한밭문화제를 육성하고 싶습니다. 축제를 재미있고, 볼거리가 넉넉하고, 즐겁게 만들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지요. 그동안은 약간 보수적인 성격으로 유지됐던 한밭문화제 성격을 화려한 축제형식으로 탈바꿈할 생각입니다. 대전예총 산하 음악과 국악, 무용, 연예, 연극 등 10개 협회가 모두 참여하는 공연을 선보일 것입니다. 예산이 큰 문제지만 감수하고 일단 해보려고 합니다. 해외 유명 축제를 벤치마킹하고 시민공청회 등을 통해 성공하는 축제로 만들겠습니다.
-정견 발표와 취임사에서 추락한 대전예총의 위상을 드높이고, 지역 예술인들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재차 강조하셨죠.
▲현재 지역 예술은 행정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예술은 경제적 논리를 토대로 소비성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지역 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하는 대전예총의 상황도 갈수록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반적인 상황도 문제지만 일부 예술인들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편의주의도 문제입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연합성을 기반으로 창의적 활동을 펼쳐나가야만 대전예총과 지역 예술인들의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 먼저 각 분과별 공청회와 심포지엄을 개최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협회 내부의 어려움과 개선 방향 등의 의견도 적극 수렴해 예총 운영에 반영할 것입니다.
-'강한 대전예총'을 주장하셨는데 앞으로 4년간 예총 운영 방침은 어떻게 세우고 계신지요.
▲힘 있는 대전예총, 강한 대전예총을 만드는 게 주된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산 확보가 시급합니다. 예산구조가 탄탄해야 진행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사업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존에 예총에서 주관하던 사업들이 문화재단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총과 재단이 주관해야 할 사업들을 각각 면밀히 검토해 재단 측과 협의하겠습니다. 지자체나 지역 기업들의 지원이나 개인 후원에 그치지 않고 예총 차원에서 중앙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4년간 예총의 운영방침은 '아버지의 역할'과도 같습니다. 가장은 가족들을 챙기고 자식들의 일을 지원해주죠. 예총도 이와 같습니다. 예총 산하 10개 협회의 사업을 지원해주는데 충실할 계획입니다. 지역 문화예술을 대변해 지자체와 시민들의 창구 역할도 할 것입니다.
-지역 예술인들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사실 대부분의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기본적인 경제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총이 예술인들의 창작 환경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기구임에도 현실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술인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대전예술인 복지재단 설립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의료·법률·교육기관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의료지원과 법률자문, 장학사업 등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가진 예술적인 능력과 특성을 협약기관들에 제공하는 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연계사업을 추진하고 설립기금 1차 목표액인 3억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등 주요 사업의 일선에 나서서 직접 발로 뛰겠습니다.
-지역 문화예술인 육성을 위한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역 예술인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적인 환경 개선이 급선무입니다. 물론 예술이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과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예술현장이 우선시되는 정책들을 펼쳐나간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전에는 10개 대학이 있습니다. 매년 1000여명의 예술 전공 학생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지역에 자리잡고 예술인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다른 시도보다 좋은 인적 인프라를 갖췄지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죠. 레지던스 사업이나 공공작업 활동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할 것입니다. 시와 자매결연하고 있는 해외 8개국 도시와 연관된 작품 활동도 연계할 계획입니다. 지자체 관할 공공기관 여유 공간이나 폐교 등을 이용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중요합니다. 언론사나 기업 협찬을 통해 신인 예술인들에 대한 시상제를 신설하는 것도 활성화 방안 중 하나입니다. 예총과 교육청이 연계해 여러 문화예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예술인들은 일자리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이같은 방안들을 예총 차원에서 대전시와 직접 협의할 예정입니다.
-대전이 아직도 '문화 불모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흡한 점이 많아 대전예총의 역할이 클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과거에 비해 문화 관련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대전이 '문화 불모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은 문화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역 문화예술을 콘텐츠화해 특별한 도시브랜드로 구축해야 합니다. 각 예술분야별로 '1과제 1목표' 제도의 집중 추진이 필요합니다. 물론 예총은 문화예술 전 분야를 대표하는 만큼 앞장서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미술은 '국제 아트쇼'를 좀 더 큰 규모의 미술축제로 키운다거나, 음악은 여름 장마가 지난 후 갑천변을 중심으로 국제 음악제를 개최하는 겁니다. 무용과 연극, 연예는 함께 묶어 대전을 상징하는 과학이나 문화 등을 테마로 구성해 '매직 뮤지컬'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국제청소년영화제는 자체 경연대회가 아닌 축제형식으로 바꾸고, 한밭국악경연대회는 대중화해 운영하는 것도 방안 중 하나가 되겠죠. 문학과 사진, 건축 등도 동일한 콘텐츠화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콘텐츠화가 이뤄진다면 대전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축제가 넘쳐날 것입니다.
-대전예총 활동으로 매우 바쁘실듯한데 올해 무용단 계획은 어떠신지요.
▲예총 회장으로서의 역할이 있지만 제 인생의 전부이기도 한 무용은 당연히 계속할 것입니다. 2번의 공연을 계획중인데요.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간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일대기로 쓴 서포 김만중의 '윤씨행장, 김만중의 꿈'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 공연을 통해 부모에 대한 효심이 점차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작품인 '바다꽃'도 무대에 올릴 예정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대전예총 회장이지만 무대에선 무용인 최영란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4년간 대전예총회장을 맡으시게 됐는데, 취임 포부와 각오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대전예총의 위상과 그 위치를 바로잡고 업그레이드시키는게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만큼 꼭 되살려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큽니다. 지역 예술인들이 걸고 있는 기대또한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목표한 것은 꼭 이루고야 마는 성격입니다. 대전예총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존감 회복과 발전이 목표입니다. 더 나아가 대전의 수준높은 문화예술 환경 조성과 문화도시 브랜드 구축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년 동안 잘 지켜봐주셔요. 새롭게 발전하는 대전예총의 모습을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최영란 회장은= 1959년 8월 2일 경남 고성에서 출생, 한양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화예술학과에서 석사학위, 계명대 대학원 체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이자 제27호 승무 전수자다. 대전시립무용단 부단장과 보리수예술단 안무장, 국제교류예술단 단장, 대전전통예술단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현재 목원대 스포츠건강관리학과 교수로 재임중이고 예비사회적기업 최영란예술단 단장을 맡고 있다.
전국 무용제 최우수 연기상, 대전예총회장상, 전국무용제 금상, 대전시장상, 국제로타리3680지구 제1회 초아의 봉사상, 전국 무용전 대전무용제 대상, 창작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공연 작품으로는 '낙뢰', '학의 푸른 둥지를 태우는 노을', '별 하늘에 목동', '윤씨행장', '바다꽃', '겨울연가', '천년의 사랑' 등 다수가 있다.
소록도 등 소외계층,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그들의 손을 맞잡고 재능기부 공연을 펼치는 등 수많은 자선공연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대담=한성일 취재 3부장(부국장)
정리=송익준·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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