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아이들이 내게로 와서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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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아이들이 내게로 와서 시가 된다

김명화 서산 부춘초 교사

  • 승인 2015-02-17 12:38
  • 신문게재 2015-02-18 18면
  • 김명화 서산 부춘초 교사김명화 서산 부춘초 교사
▲김명화 서산 부춘초 교사
▲김명화 서산 부춘초 교사
언 땅이 오래 참았던 깊은 숨을 내쉰 듯 복수초 꽃이 노랗게 솟아올랐다. 남매처럼 따뜻한 납매의 개화 소식이 차고 메마른 이월의 날씨를 흔들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고. 그래, 봄 맞을 준비를 해야지. 겨울 등산 장비를 정리하고 무겁고 칙칙한 겨울 외투가 걸려있던 자리에 밝은 색 원피스를 걸어놓는다, 양털 부츠를 신발장 깊숙이 밀어 넣고 산뜻한 구두 두어 켤레를 맨 앞쪽으로 내어놓으며 사뭇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이만하면 봄에게로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언감생심.

“세상의 봄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이들이다”라고 믿는 나에게는 새 학년의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가장 중요한 봄맞이 준비이기 때문이다. 지난 학년의 내 모습을 반성하는 것부터 아이들맞이 준비는 시작된다. 그만하면 잘한 거야, 아,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후회와 위로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봄을 어떻게 맞아들이고 어떻게 가꿔 나갈지 방향을 잡아본다. 올해 우리학교 교육과정은 인성 지도가 중점이라 하니 아이들 마음 가꾸기 활동을 이것저것 생각해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닦으며,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며 사실은 마음을 청소한다.

마음이 맑아지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덩달아 새로운 선생님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축복으로 여겨진다. 아이들 없는 봄은 얼마나 밋밋할까? 봄에 살아있는 소리와 색깔을 입히는 아이들, 봄을 데리고 내게 와서 아이들은 때때로 시가 되기도 한다.

재잘재잘 야외학습 나온 아이들 목소리

무슨 얘기일까 궁금해 더는 못 참는 나무들

꽃샘바람 매워도 어디 눈 안 뜨고 배기겠어?

잎눈 꽃눈, 샛눈 뜨고 귀기울이는 걸 봐

물뿌리개 같은 아이들 발바닥에 이마를 짚힌 봄

환절기의 신열 무거워도 훌훌 털고 일어서겠지

아이들 손잡고 가는 선생님

꽃씨같은 녀석들, 떡잎 같은 녀석들

가슴에 꼭꼭 눌러 심고 있을 거야

선생님 선생님 부를 때마다 짜르르, 젖줄이 돌 거야

'식목행사 바라보기' -김명화 -

어느 해인가 식목일 계기교육으로 아이들 데리고 야외학습 나갔을 때의 생각을 쓴 시다. 저학년 담임을 처음 맡은 해였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매년 봄날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정말로 나는 아이들을 가슴에 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벅차게 나를 흔든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설명하기 어려운 그 느낌을 짜르르 젖줄이 돈다고 표현했었다. 이번 새 학기엔 어떤 봄의 얼굴로 와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까? 어떤 꽃씨로 와서 내 마음에다 꽃을 피울까? 그래, 꽃 필 때까지 즐겁게 흔들려 주리라. 봄맞이 마음 준비로 이런 상상은 어떨까? 창밖의 봄과 교실 안의 봄이 만나는 즐거운 풍경 한 장 그려 본다.

삼학년 이반 꽃밭에 놀러온 햇살들, 꽃들이 아직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심심했던 거예요. 영차영차 창틀까지 올라와서는 얘들아 노올자. 아이들 발등으로 뛰어내렸지요. 금방 알아차린 선우랑 꼬무락꼬무락 발장난 손장난 재미있어라 통통 튀는 햇살, 선생님 말씀에 저요 저요 손도 들었는데 계속 그렇게 장난치면 너 오늘 동시 두 편 외우기 벌이다, 듣고 있니 선우야. 선생님 말씀에 놀란 햇살들, 저희 보고 그런 줄 알고 와르르 꽃밭으로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리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겠지요. 꽃들이 그걸 보고 웃음보 터뜨렸어요. 못 참고 까르르 꽃잎이 열린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노랗게 빨갛게 몇몇 꽃잎 비뚤비뚤했지만.



햐, 이쁘다 언제 이렇게 피었다냐

하겠지요. 사람들이 보고 선우도 보고 '꽃, 피기까지' -김명화 -

봄 햇살과 엉켜 뒹구는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내게로 온다.

이렇게, 봄이 오고 시가 온다.

김명화 서산 부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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