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건양대 총장 |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체벌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우리 사회를 다시 들끓게 하고 있다. 체벌의 정당성 문제는 결국 '사랑의 매'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의 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서양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엄하게 키운 자식이 훗날에 효도한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서양에서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격언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관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중국의 격언서 '삼자경(三字經)'에는 “양부교 부지과(養敎 父之過), 교불엄 사지타(敎不嚴 師之惰)”라는 말이 있다. 즉, “자녀를 양육하되 가르치지 않으면 이는 부모의 과실이요, 가르치되 엄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승의 게으름이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올바른 교육을 위해 '부모님의 매'와 '선생님의 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이 동서고금을 통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정되어온 '체벌'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수일 전 TV에 공개되었던 어린이집의 CCTV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다. 네 살 어린아이를 가격하는 교사의 주먹은 매우 거셌으며 그것을 맞은 아이는 날아갈 듯 허공에 떴다가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광경을 다른 아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 그 어린이 집 방 안에 감돌았을 공포감, 아이들에게 엄습했을 두려움을 생각해본다면 그 '매'는 분명히 교육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매의 차원을 넘은, 한마디로 도가 지나첬던 것이다.
앨리스 밀러라는 교육학자는 사랑의 매는 없다는 자신의 저서에서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교육이 그 이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기술했다. 성인이 돼 갖게 되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대부분이 어린 시절 부모나 교사에게서 받은 체벌, 냉대, 무시, 굴욕, 학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같은 밀러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우리 주위에 '사랑의 매'의 효용성,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많은 것을 보면 체벌의 긍정적 요소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그때 그 매'가 자신을 사람되게 만들었다든가 혹은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는 고백 역시 많이 접할 수 있다. 필자 역시 부모님의 엄한 꾸지람, 스승님들의 따끔한 매가 학업 신장은 물론 인격 형성에 큰 보탬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매를 맞아야 했던 이유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보고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교육적 효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어린이집 체벌 문제는 결국 객관적인 체벌의 수준을 넘었다는 데 있다. 그같은 측면에서 최근 어느 글에서 읽은 감정 다스리는 외형적 방법은 매우 설득력 있게 와닿는다. 그 필자는 '사랑의 매'로 가장 좋은 것은 회초리라고 강조한다. 손으로 직접 때리면 감정적이 되기 쉽지만 회초리를 사용하면 우선 가질러 가는 동안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회초리로 직접 때리지 않더라도 가지러 가는 행위 자체나 회초리로 방바닥을 탁탁 내리치는 행동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회초리의 용도를 아이에게 설명해 둔 상태에서 그 회초리를 드는 상황을 만들어낸다면 훈육의 효과가 커질 것은 당연하다.
언제부터인가 대나무를 두 겹으로 잘 다듬어 매로 만들어 파는 것을 인터넷에서 접한 적이 있다. 별로 아프지는 않으면서도 소리는 요란한 불가(佛家)의 죽비(竹扉)를 연상케 한다. 양띠 새해에는 집집마다 이 대나무 매를 하나씩 매달아 놓으면 어떨까.
김희수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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