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문화평론가 |
하늘에 열 개의 해가 나타났다. 이들 해는 천제와 그의 부인 희화의 아들들이었다. 원래 하루 하나씩 천상에 나타나야 하지만 재미 삼아 한꺼번에 다 나타나기로 한 것이다. 열 개의 해가 뜨자 지상에는 동식물이 죽어가고 강과 바다의 물이 마르는 등 큰 재앙이 닥쳤다. 그러자 요임금은 이를 막아 달라고 천제에게 간청하였고, 천제는 후예(后羿)를 지상으로 내려 보내 다스리라 하였다.
후예는 지상의 참혹한 모습에 화부터 내고는, 이들 열 개의 해를 잘 이해시켜 본래 방식으로 돌리는 순리(順理) 대신 활을 쏘아 해들을 떨어뜨리는 역리(逆理)를 택하였다. 천상의 최고 명궁인 후예는 열 개의 화살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어쩌면 천제가 궁사를 내려 보낸 것부터 잘못이었다.
어진 요임금이 후예 몰래 한 개의 화살을 숨겨 해 하나는 남게 되었지만, 후예는 자신의 아들들을 잃은 천제의 노여움을 피할 수 없었다. 후예는 부인 항아와 함께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지상으로 아주 추방당하였다. 이에 불만이 컸던 부인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조차 배신을 당한 후예는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신화가 주는 교훈은 해석하는 이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체로 두 가지가 아닐까.
하나는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비범한 재주나 힘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것으로서, 그 재주나 힘을 방자하게 사용할 경우 엄청난 징벌이 따른다는 깨우침이다. 다른 하나는 방법상의 순리를 저버리고 최후의 목적 달성만을 도모할 경우 끝내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것으로서, 그 민주적이고도 합리적인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는 깨우침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재주나 힘만 믿다가 패망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재주가 탁월할수록 그 재주를 겸손하게 써야 하며, 힘이 클수록 그 힘을 바르게 써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드러내야 인정받는 세상이라지만 너무 성급하고도 지나친 요즘의 과시욕은 불행하게도 부당함, 불공정함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따지고 보면 최근 우리 사회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갑질’도 자신의 재주나 힘을 잘못 사용하는 사례이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주차요원을 무릎 꿇린 백화점 모녀’, ‘경비원을 자살에 이르게 한 아파트 입주민의 폭력’ 따위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하청업체, 대형마트와 납품업체, 정부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 손님과 종업원 등의 사이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갑질’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해치는 주범들 중 하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갑돌이’와 ‘갑순이’가 자신들의 갑질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고도 불가피하다고 합리화하는 데 있다. 도리어 그런 역리를 순리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평소에도 막말을 일삼던 조현아 전 부사장은 그 날 일에 대해서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 오히려 잘못한 사무장이 사과하라, 어디다 대고 말대꾸냐”라 했다는 것이다. 백화점 모녀도 “때릴 수 없어 무릎을 꿇렸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라 했다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명궁 후예는 자신의 재주와 힘 때문에 망하였다. 재주와 힘을 자랑은 하였으나, 정작 자신은 몰락의 길로 내몰렸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뜻은 이루었으나,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우리 사회에는 한때의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해서 신의(信義)와 상규(常規)를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사회라는 거대한 게임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려면 바른 룰(rule), 그리고 그 룰의 준수가 전제되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시절이 하 수상하구나.
박상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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