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 당진 조금초 교장 |
시는 이런 것이다. 시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울림이다.
책을 끝까지 읽은 게 거의 없지만 지금껏 버텨 온 것이 시집을 읽은 것이라는 최진석 교수님의 겸손한 말씀으로 인문학을 생각하게 된다.
휴머니티(humanity)의 라틴 어원은 이상적 인간을 뜻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이다. 인문학이란 후마니타스(humanitas)에 대한 배움 즉, '인간다움에 관한 학'으로 사람의 인성을 갈고 닦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인문학을 찾는 것은 풀리지 않는 삶에서 지혜로운 참모를 얻기 위함이고, 정답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그저 그런 느낌으로 쌓여 있다가 무의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다.
2012년 9월, 교장으로 발령받으면서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시작한 것이 '시 외우기'였다. 도교육청 사업에 참여한 개발위원이기도 했고, 개발한 것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도 개발위원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한 점도 있다. 무엇보다 문사철 중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중에서 시가 부담이 적다. 대체로 짧으니까.
전교생 70여명의 작은 학교지만 빠른 시간 안에 학생들을 익히기에도 시 외우기는 좋은 방법이었다. 도교육청에 만든 '다정다감 우리시가 외우기' 자료를 재구성해 시 낭송집 '달콤한 시럽(詩-Love)'을 제작했다. 학년 당 13~15편 정도로 넣고 뒷부분에는 교과서 외의 시를 넣어 해당 학년 것을 다 외우면 자유롭게 외울 수 있도록 했다. 담임교사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오롯이 교장인 내가 하기로 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아이들은 시집을 들고 교장실로 와 쑥스러워 하며 시를 외웠다. 아이들의 이름을 익히고 외운 날짜를 써주고 맛있는 사탕을 고르게 하면서 아이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1·2학년 아이들이 '풀꽃' 을 외우면 정말 '풀꽃'같다. 그 '풀꽃' 시를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내가 출장을 간 날이면 '교장선생님 출장 가셨어요. 동시를 사랑하는 조금초 학생들, 월요일에 오세요.' 교감선생님께서는 교장실 문에 이런 메모를 붙여 놓기도 하셨다.
그렇게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매월 갖는 '드림 콘서트' 시간에는 시를 가장 많이 외운 아이, 가장 맛있게 외우는 아이에게 전교생 앞에서 낭송할 기회를 주었다. 토요일에 시 캠프도 운영하고, 학예회와 졸업식 식전 행사에 시 낭송 프로그램도 넣어서 학부모와 지역인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3학년 친구는 금방 3학년 것을 외우고 자유시까지 모두 외웠다. 지역에서 하는 시낭송대회도 나가보았다. 그러나 외우는 기술에 치우쳐 있어서 초등학생에게는 맞지 않다고 판단되어 더 이상 나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도 교실에 들어갈 기회가 있으면 '달콤한 시럽(詩-Love)'을 달랑 들고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외우거나 낭송한다.
문학 외의 역사는 책과 함께 하는 주제학습으로, 철학은 다모임을 중심으로 하지만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이 느리지만 여유있는 놀이를 하는 것은 훗날 우리 아이들이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생명의 서' 일부)하는데 큰 힘이 될 것임을 믿는 까닭이다.
김희숙 당진 조금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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