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완식 대관령 푸드 대표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정직하게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철칙을 갖고 새로운 브랜드와 메뉴의 음식점을 열며 요식업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
'쌈꾼', '옛마당' 브랜드까지 전국 매장 70곳 운영하게 돼
'웰빙(Well-being)문화'가 우리 사회속에 자리를 잡아가면서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좋은 음식을 어떻게 잘 먹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선택이 하나의 생활 패턴 속에서 녹아들어간다는 데 초점을 두고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 바로 대관령 푸드 송완식(45) 대표다.
송 대표는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대표음식으로 꼽히는 동태찌개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시작으로 외식업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운 주인공이다.
그와 음식점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지인을 믿고 목돈을 빌려준 게 문제가 되면서 겨우 집한채만 남기고 전재산을 잃은 송 대표는 숱한 고생 끝에 2005년 테이블 10여개가 고작인 허름한 동태찌개 식당을 서구 내동에서 열었다.
이후 정직하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10년이 흐른 지금은 서민 밥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젠 양푼이 동태찌개를 비롯해 옛마당 등 전국 체인점 70여 개를 거느리고 있는 외식업계 대표로 우뚝섰다.
가족들과 먹고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는 삶의 굴곡이 그를 외식업계로 이끌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차린 음식으로 극진하게 대접받은 손님이라면 세상에 대해 독을 내뿜지 않는다'는 말을 머릿속에 새기며 서민들의 밥상과 술상을 채워갔다.
좋은 재료를 고집하며 싼 재료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송 대표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온 마음으로 차려낸 따뜻한 밥상이 되고 싶다는 송완식 대표를 만나 맛의 비결과 경영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대관령 양푼이 동태찌개 식당으로 첫 시작했는데 계기가 있다면.
▲인생에서 식당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30대 초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양푼이 동태찌개를 열게 됐다. 사실 어느 식당에 가도 동태찌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한 메뉴였다. 아마 남들과 똑같은 냄비에 동태찌개를 담았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넉넉한 인심, 서민들 옆에 항상 함께했던 그릇에 음식을 담아 손님들에게 내놓았던 것이 프랜차이즈를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일본 원전 여파로 적지 않은 타격을 보기도 했다. 청정지역에서 안전한 동태를 잡아오기 때문에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음식에 대한 끼가 있었나.
▲음식에 끼가 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고향이 논산 양촌인데 이곳에서 어머니는 제일가는 음식 솜씨쟁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요리하시는 모습을 보며 그냥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전부다. 해보지 않은 음식인데도 음식에 뭐가 들어가는 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어머니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운영해오던 사업이 어려워지고, 믿었던 지인으로부터 큰 손해를 보면서 음식점에 발을 들인 것이 끼를 발산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것 같다.
지금도 음식에 뭐가 들어가야 좋을 지 만들어 진 후에도 매번 맛을 보며 검토하고 있다.
-세월호 여파 등 장기간 경기침체로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위기 극복은 어떻게 했나.
▲동태찌개의 경우 온 국민이 좋아하는 서민음식이었다. 단돈 1만~2만 원으로도 먹을 수 있고 회사 선후배들이 둘러앉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첫 문을 열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때문에 서민음식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동태찌개를 좀 더 전문화된 이미지로 변화시켜 내세운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적인 동태찌개를 일반 냄비가 아닌 양푼에 담아 푸짐하게 제공하자 옛 추억을 찾고 싶어하는 또다시 소비자들이 열광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확신 때문에라도 앞으로도 조금씩 계속 변화를 곁들이며 소비자들에게 새로움을 전달할 생각이다.
-대관령 동태찌개에 이어 다른 음식점도 문을 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들은 동태찌개를 해서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다른 분야의 체인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쌈꾼'은 요즘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강식이다. '꾼'은 전문가 또는 무리들이라는 말로 쌈을 좋아하는 전문가라는 의미로 쌈밥전문브랜드인 '쌈꾼'을 열었다. 손님들의 건강한 밥상을 만들기위해 만든 브랜드다.
또한, 지난해 2호점으로 확장한 '옛마당'은 추억과 낭만이 있는 70~80년대를 그리워하는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한 민속전통주점이다.
DJ가 직접 신청곡과 사연을 받아 소개하고, 넥타이 부대들이 일을 마친 뒤 고향집처럼 푸근한 곳에서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브랜드와 메뉴의 음식점을 계속 열며 요식업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그래서 계속 도전하고 싶다. 지금도 전국의 소문난 맛집을 계속 찾아다니며 배우고 또 연구하고 있다.
-체육회 활동, JC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JC(한국청년회의소)는 내 삶의 멘토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봉사활동을 통해서는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다.
젊은 시절 JC조직에서 배운 많은 문화는 지금의 송완식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육회 활동 또한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차에 롤러스케이트연맹 부회장을 맡은 게 여기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태권도 공인 2단에서, 복싱, 사이클연맹부회장, 축구협회 등 10여년간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어려운 환경속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
어려움 속에서 꿋꿋히 운동하는 학생들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겨 후원활동에 나섰으며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신궁들이 대전에서 육성되고, 또 활동하길 기대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유성JC에서 대전지구 회장에 오르고 한국JC 재정실장, 사무총장까지 하게 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몽골에 살고 있는 한인들을 찾아 간 적이 있는데, 어렵게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한인학교를 지어주고 심장병 어린이들을 데리고와서 수술시켜 준 게 내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게 해줬다.
개인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는 의미에서 큰 봉사였다. 봉사라는 것은 순수하게 남을 위해 배려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더 많은 걸 배우고, 나 자신이 발전하는 것을 느꼈다.
-사업의 철학이 있을 것 같다.
▲세상 모든 게 정직해야만 성공한다고 믿는다. 특히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정직해야만 한다.
음식은 내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정직하게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손님에게 거짓말을하고 나쁜 재료를 쓰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입맛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좋은 재료가 아니면 돌려보내는 게 철칙이다.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들고 고객에게 자신 있게 내놓아야 한다. 요즘 먹을 거리와 관련된 불법 영업 뉴스를 많이 보게 되는데 가슴이 무척 아프다. 멀리 보고 주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계획은.
▲우선 대관령 양푼이 동태찌개 프랜차이즈를 계속 늘려 갈 계획이다. 이 외에도 쌈밥집인 쌈꾼, 그리고 민속식당이자 주점인 옛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진만큼 다른 분야의 체인점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쌈꾼은 요즘 소비자들이 원하는 웰빙식 유기농 쌈밥집이다. 고객의 식탁에 오르는 쌈이 20여가지나 되는데, 계룡과 논산에 있는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로 제공하고 있다. 건강한 밥상을 추구하기 위해 그만큼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는 데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외식사업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때마다 트렌드가 바뀌고 음식도 유행을 타듯 그 유행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내고 변화를 줄 것이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에 변화를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생에 좌우명은 무엇인가.
▲좌우명은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을 가진 유지경성(有志竟成)이다.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이다.
35평 남짓의 조그만한 식당에서 꿈을 꿨을때 정말 행복했다. 주방에서 3개월 이상 동태찌개를 끓이면서 고객들에게 푼돈받을때도 행복했다.
끝 없는 추락속에서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그 열정으로 부모님 가족에게 음식을 드린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겪어오면서 손님들이 만족을 채워왔던 것이 지금의 모습을 있게 만들었다.
나아가 전국으로 브랜드를 확장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꿈을 꿨고 조금씩 그 꿈을 향해 가고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남은 40대와 다가올 50대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이제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해나가고 싶다.
대담=김재수 취재2부장(부국장)
정리=박수영·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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