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 다 떨군 앙상한 몸 법정 스님같은 굴참나무가 가식없는 눈빛을 보내
▲ 계룡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제공 |
오랜만에 오르는 1월의 계룡산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로지 나의 폐가 들먹이는 소리, 나의 콧구멍과 목에서 씨근거리는 숨결의 소리, 스틱이 가볍게 꽂히는 소리 따위의 나 자신이 내는 음향 외에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침묵이었다. 쉬지 않고 천천히 오르다 보니 거리감의 인식도 사라진다. 나는 곧 나무들에 둘러싸였다. 무성한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굴참나무들은 말린 북어마냥 하늘 끝에 매달려 있다. 법정 스님을 볼 때마다 겨울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기름기 하나 없는 앙상한 몸에 도드라진 광대뼈가 구도자의 인내와 지성의 숨결을 느끼게 했다. 어찌보면 차가워보일 수 있는 가식없는 눈빛은 깐깐함마저 보여,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좋았다.
올라갈수록 산 비탈에 희끗희끗 눈들이 쌓여 있었다. 산 아래서 따사롭게 비추던 햇살도 잦아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까마귀 소리가 한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후끈 달아오르는 열기를 좋아하지만, 칼같은 바람을 맞으며 겨울 산을 오르는 맛도 일품이다. 산에 오르면 그냥 산이 좋다는 걸 깨닫는다. 오래 전 가수 이장희가 한 인터뷰에서 돈, 명예, 여자 원없이 누리고 가져봤지만 대자연의 품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었다고 말한 기억이 새롭다.
어떤 방식으로 살든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불행이 있다. 타인에 의해서든 나의 이기심에 의해서든 상처주고 상처받는 관계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진다. 우리의 현실은 그만큼 불행한 삶의 조건으로 가득 차 있다. 단지 행복한 척 할 뿐인 거다.
내려오자마자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도라지를 다듬던 주인아주머니가 난로 위에서 펄펄 끓는 차를 건넸다. 쌉싸롬한 게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당귀, 도라지 등 몸에 좋은 거 넣었다며 사람좋아 보이게 웃는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일 거드는 여자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간간이 쳐다본다. 중국교포냐고 물었더니 난롯가에서 불을 쬐던 주인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산채비빔밥과 함께 나온 된장찌개가 일품이었다. 냉이의 풍미와 된장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주인 아저씨가 금산에서 직접 농사지은 거라며 농사짓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말투에 경상도 억양이 배어있어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진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주를 가도, 대전에 와도 사람들이 자기 말투가 이상하다고 한다면서,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쓸쓸함을 내비쳤다. 식당을 나와 동학사에서 천황봉 쪽을 보니 산 정상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위용을 드러낸 눈덮인 계룡산이 위엄있게 버티고 있었다. 늘 와도 질리지 않는 산, 계룡산. 계룡산과의 랑데부는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가는길=자가용은 호남고속도로에서 유성 IC로 빠져 좌회전 후 우회전 하면 계룡산이 보인다. 버스는 대전에서 1시간 걸리며 수시로 있다.
▲먹거리=동학사 인근엔 토속음식점이 즐비하다. 산채비빔밥과 파전, 막걸리가 꽤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우난순 기자 woo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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