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배재대 총장 |
김영란 법은 법안 발의 때부터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다. 한 편에서는 공직자를 모두 나쁜 사람으로 보느냐며 지나치다는 불만이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당연한 것이 너무 늦게 발의되었다는 불평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공직자에게 투명성이나 청렴도를 법으로 개선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새해 벽두에 공직자의 윤리성을 조금이나마 책임질 '김영란 법'의 처리를 앞두고 우리보다 먼저 홍역을 치른 독일의 예에서 우리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상장이나 학위증을 줄 때 수여(授與)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이 때 수여는 보통 “가지도록 건네거나 베풀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독일의 졸업장에는 조금 다른 문구가 적혀있다. 독일 대학교에서 수여하는 모든 학위증에는 '빌려주다'의 의미를 가진 '페아라이헨(verleihen)'이란 단어가 적혀있다. 이 단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그 의미를 그대로 살린다면 대학교에서 졸업생에게 학위증을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빌려준다는 뜻이다. 빌려주는 것이나 수여하는 것이나 별 차이는 없을지 모르지만 주는 쪽에서 보면 굉장한 차이가 있다. 빌려준 사람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의미를 그 속에 담고 있다.
이와 관련된 실질적인 사례가 있다. 2013년 독일 총선에 승리해 세 번째 총리직에 오른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교육정책 파트너로 아네테 샤반을 지목하고 교육부장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샤반은 곧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그러자 샤반에게 박사학위증을 '빌려'주었던 뒤셀도르프대학교에서는 학위증 반납을 요구했고, 결국 샤반은 학위증 반납뿐만 아니라 장관직까지도 사임해야 했다.
만약 샤반이 공직자가 아니었다면 이 문제는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즉 독일 사회에서는 공직자에게 거는 기대와 그들을 제는 척도는 조금 특별하다. 공직자에게 거는 독일인들의 생각을 하나 더 살펴보자. 우리나라에도 충격을 주었던 2002년 세칭 '마일리지 스캔들'이 그것이다. 2002년 여름휴가를 앞두고 독일연방 국회의원 사무실에 한 장의 설문지가 도착했다. “이 번 여름휴가를 위해 구입하신 비행기 표는 국회의원 여러분의 자비로 구입하신 것입니까?”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이 담긴 설문지였다. 물론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이 설문지를 자신의 비서에게 처리해 줄 것을 일임하고 휴가를 떠났다.
하지만 이 설문지가 특정 당파와 특정인을 겨냥한 독일 유력 신문인 '빌트'지의 계획이었던 것을 알아차린 국회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공직자는 공무로 비행기를 타고, 이때 생긴 마일리지는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사용한다. '빌트'지는 바로 이것을 노렸다. 그 결과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의 한 유력 주자는 총선을 포기해야 했고, 베를린 주 정부의 경제장관이며 민주사회당의 전 당수였던 그레고리 기지의원은 장관직 사퇴와 함께 정치 은퇴를 선언했다. 공무로 얻은 비행기 마일리지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독일의 국회의원은 생각보다 많았고 '빌트'지의 설문은 정치적 뇌관이 되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공직자에 대한 윤리적 투명성이나 청렴성은 모든 나라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공직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김영란 법이 최고의 법은 아닐 것이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이 법안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두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공직사회의 윤리나 도덕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로서는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것은 공직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앞으로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영호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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