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밥심으로 산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밥심으로 산다

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

  • 승인 2015-01-06 13:48
  • 신문게재 2015-01-07 18면
  • 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
▲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
▲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인 '삼시세끼'가 큰 인기를 얻었다. 두 명의 도시남자가 강원도 산골의 농가에서 하루 삼시세끼를 주변의 산야에 널려 있는 식자재들을 활용하여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푸성귀를 따다가 재료를 마련하고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붙여 겨우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면 바로 점심 준비를 할 시간이다. 식사준비는 이처럼 고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안 해 먹을 수도 없다. 두 도시청년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수수밭에 가득한 수수도 베어야 하고, 염소를 위한 집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끼니를 든든히 챙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챙겨먹는 삼시세끼는 단순한 밥이 아니라 곧 생활의 활력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삼시세끼를 우리의 아이들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한 학교의 장으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학교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의 약 22% 정도가 아침을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상으로 보면 아침을 거르는 이유는 다양했다. 그냥 먹기 싫어서, 배가 아파서, 늦잠을 자서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담임교사나 상담교사를 통해 좀 더 깊이 알아본 결과는 좀 다르게 나타났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먹기 싫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집안 형편 상 먹을 수가 없어서 아침을 굶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학생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모님이 일찍 출근하시고 동생들 밥을 챙겨주다 보면 자신은 먹을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밤늦게 퇴근하시는 홀어머니를 깨우지 않기 위해 아침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자매 둘이서 생활한다는 학생들은 아침에 조금만 늦으면 아침밥을 먹을 수 없이 학교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아침만 거르는 학생들은 다행인 편이었다. 부모들이 병환중이거나 경제적 무능력으로 저녁식사까지도 챙겨먹을 형편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업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까? 시간을 두고 학생들을 관찰해 보았다. 관찰 결과,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은 지각하는 일이 많았고, 수업시간 중인데도 아침부터 엎어져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다. 더구나 교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폭력 사안에는 예외 없이 그 학생들이 포함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흔히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해왔다. 어른들도 배가 고프면 본능적으로 짜증스러워지고 전투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이에 백방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충남의 경우 2014학년도부터 중학생 대상으로 무상급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점심은 학교에서 먹일 수 있지만, 아침을 먹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한 학부모의 노력으로 어느 기업인을 만났다. 사연을 전해들은 사장님은 선뜻 거금을 발전기금으로 기탁해주었다. 그 덕에 지난 9월 말부터 47명의 아침을 거르던 학생들이 학교 앞 식당에서 따뜻한 아침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아침밥을 먹던 학생들이 이제는 밝은 모습으로 식사를 한다.

그 덕분인지 지난 학기 동안 우리학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지각생들이 크게 줄었다. 아침에 학교에 오기 싫어하던 학생들이 아침 식사를 위해 학교로 달려오고, 아침을 든든히 먹은 덕에 수업에도 졸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다. 짜증스런 마음으로 동료들과 드잡이를 하고 후배들에게 손찌검을 하던 버릇들이 사라지고, 학교폭력도 크게 줄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은 주식인 밥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말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든든하게 밥을 먹여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밥심으로 이 나라의 미래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조영종 천안부성중 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긴박했던 6시간] 윤 대통령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2.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국회 본회의 가결
  3. 계엄사 "국회 정당 등 모든 정치활동 금지"
  4. 충남대, 공주대와 통합 관련 내부소통… 학생들은 반대 목소리
  5. "한밤중 계엄령" 대전시-자치구 화들짝… 관가 종일 술렁
  1. 계엄사 "언론·출판 통제…파업 의료인 48시간 내 본업 복귀해야" [전문]
  2.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3.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에 대전도 후폭풍… 8년 만에 촛불 들었다
  4.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5. [사설] 교육공무직·철도노조 파업 자제해야

헤드라인 뉴스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정기국회 등 올 연말 여의도에서 추진 동력 확보가 시급한 충청 현안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시 연기된 2차 공공기관 이전부터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충남 아산경찰병원 건립,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 중부고속도로 확장까지 지역에 즐비한 현안들이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 지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단 지적이다.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4일 새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등 밤사이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갔..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