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명석고 교감 |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교무실로 1학기 때 수업을 담당했던 1학년 학생이 교무실로 반갑게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 ○○이 무슨 일로 왔니?'하고 물으니 손에 든 시험지를 보여 주며 하는 말이 '교감 선생님 1학기 때 한 약속 지켰어요! 짜장면 곱빼기 사주세요!'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1학기 수업을 담당할 때 녀석은 중간, 기말고사 성적이 한자리 숫자였다. 시험공부라고는 책 한번 읽어 보지도 않고 그냥 내키는 대로 마킹하고 시험 끝을 외치던 학생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를 끝내면서 2학기 때 50점 이상 점수 나오면 선생님이 짜장면 곱빼기 사주고, 70점 이상이면 짜장면 곱빼기에 탕수육까지 사주겠노라고 서로 약속을 했었다. 그러던 녀석이 56점을 맞은 시험지를 들고 짜장면을 사 내라고 찾아온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지갑에서 만원을 내어주고 반드시 짜장면 곱빼기 저녁에 꼭 사먹고 내일 보고하라 했더니 입이 귀에 걸려 교무실을 나간다.
사실 요즘 우리 학교를 보면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일반고의 위기라는 말이 정말로 실감이 난다. 학습 자존감과 학습 의욕은 부족하고, 자기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각종 유희에 빠져 학교생활은 그저 시간 때우는 것으로 보낸다.
지난 MB정부에서 추진된 고교다양화 정책으로 여러 형태의 학교를 설립, 지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중간 역할을 하고 있던 일반고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한 것 같다. 공교육의 중심이자 고교생이 다수인 73%가 재학하고 있는 일반고 위기는 교육정책의 불균형과 교육여건에 있어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어 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입제도 또한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등에 유리한 대입제도가 마련되면서 일반고는 관심과 지원조차 없는 가운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그 위상이 하락하였고, 학생과 교사들은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위기가 심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이며, 이 위기 아닌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나?'를 생각하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현재를 일반고의 위기라고 볼 수는 있지만 학생들은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때 현 상황에 맞춰 선생님들이 그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면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창의경영학교 운영에서 수준별 학습, 선진형 교과교실제 운영, 진로 직업교육 프로그램, 학습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학습 플래너와 오답노트 제작, 학생들이 만들어 운영하는 동아리 활동, 전교생이 유도를 통한 인성함양 훈련, 학생진단을 통한 상담 프로그램, M-리그 운영 등의 계획들을 마련해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작지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4년 연속 학력신장 우수학교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학생들도 학교생활이 즐거워야한다. 철학자 칸트는 “형식이 있어야 내용이 채워지지만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학생들로 채워지지 않는 제도는 공허한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교시절에 자신의 진로를 찾고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에 헌신한다면 이 위기는 반드시 극복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오늘도 교정에서 학생들이 인사하면 '요새 어때! 재미있게 열심히 하지?'라고 물으면 '교감 선생님! 저 이제 수업 시간에 자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한다.
그래 맞다! 너희들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다!
김상수 명석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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