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 한밭대 총장 |
캠퍼스 옆 나지막한 동산의 오솔길을 걷다 보면 겨울에 참새 떼를 마주 하는 경우가 여름이나 가을보다 자주 있다. 걸음을 멈추고 참새들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잎이 져버린 여린 가지 끝에 앉아 있는 참새, 메마른 억새 줄기에 앉아 있는 참새, 앙증스런 붉은 열매를 매단 찔레꽃 덤불 속에서 후루루 내 달리며 노니는 참새들을 바라보면 근심이 금방 사라진다. 참새들에게 스트레스란 있을 수 없나 보다. 그저 즐겁기만 하다. 어미 참새가 아기 참새에게 아니면 친구 참새에게 얼릉 와, 여기도 열매, 저기도 열매야, 이리 와, 싸게 와 하는 양이 전부 즐거움뿐이다. 세상사도 이처럼 즐거우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마냥 즐거운 참새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무리에서 떨어진 참새 한 마리의 멍울진 시선이 마주하는 내 마음을 여리게 한다.
동산의 오솔길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순환을 본다. 계절의 순환과 함께 복잡한 세상일도 생각해 본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세상만사도 순환한다.
인간의 삶도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시 새로운 길목으로 들어선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거친다. 서로가 맘에 들어 관심이 자라고 풍성해지면 견실한 열매를 맺는다. 그렇지만 심한 메마름이나 폭풍우에 무너지고 떨어져 쭉정이가 되기도 한다. 풍성했든, 밋밋했든 어김없이 감정의 계절도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을 잘 견디어 내야 “다시 봄”을 잘 맞이할 수 있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울수록 어디선가 오고 있는 “다시 봄”에 대한 갈망은 사무친다. “다시 봄”은 씨눈을 품은 나목의 기다림과 희망이다.
겨울을 이겨낸 자가 처음 맞이하는 봄꽃이 “복수초(福壽草)”다.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봄의 전령사로 눈이 녹기 전에 핀다고 해서 얼음새 꽃이다. 하얀 눈 속에서 노란 꽃으로 피어나는 복수초는 겨울을 이겨낸 자의 의연함이 있다. 흰색과 노란색의 대비가 진하다. 긴 겨울을 이겨낸 자의 의연함이 꽃으로 피어나니 그 진한 아름다움은 진정 사랑과 축복이다. 사방 천지에 아직도 겨울이 남아 있지만, 눈 속에 핀 노란 복수초는 “다시 봄”이 왔음을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영원한 행복을 알리는 복수초의 노란색은 부유와 장수를 상징한다.
무심코 계절이 바뀌었다고 어찌 복수초가 그냥 피겠는가? 추운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 있다. 자연의 계절은 저절로 “다시 봄”에 이르게 하지만, 인생의 계절에서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복수초가 필 수도 있고, 피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는 보통 한 바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끝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봄, 여름, 가을, 늘 쉼이 없이 소통하고 따듯한 겨울을 지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봄이 온다. 그래야 영원한 행복이 온다.
온통 즐거운 세상에 있는 참새들의 재잘거림 뒤에도 한 마리 참새의 여린 시선이 있듯이 사람사이도 마찬가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굴곡을 살다보면 때때로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특히 배려는 겨울에 더 절실하다. 복수초의 영원한 행복은 먼저 내어줌으로 피어난다. 이것이 추운 겨울에 다시 봄을 기다리는 까닭이다. 어떤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바퀴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사연은 무엇 때문인지 조용히 묵상해 본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만 쓰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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