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경 예산 웅산초 교사 |
“선생님 때문에 속상했던 너의 기분을 이야기 해줘서 정말 고마워. 너의 그 기분을 잊지 않고 더 신경 쓰도록 할게.”
철없던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처받지 않도록 건네주셨던 이 짧은 한 마디가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꿈을 주었고, 15년 뒤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첫 제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됨됨이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결정된다. 아이의 원래 열쇠를 쥔 사람이 부모라면, 여벌의 열쇠를 쥔 사람은 교사이다. 이 열쇠들로 교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거나 닫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받은 상처들을 씻어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교사라는 직업을 존경하는 자세, '경업'하는 자세가 좋은 교사의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한다.
2014년은 나에게 있어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한 해였다. 까다로운 평가 업무, 주말이 없는 돌봄 업무, 각종 대회를 지도해야 하는 도서 업무 등 신규교사로서는 벅찼던 업무들과 연구대회, 연구학교 수업 공개, 우수사례 공모전까지 가끔은 임용을 준비하던 시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지친 표정과 쳐진 어깨를 보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교사는 늘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봄, 여름에 잔뜩 심어 놓으면 가을이 되어 좋은 수확을 하게 되겠지?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교사는 수확도, 발전도 없는 거야.”
잔뜩 심었던 봄, 여름이 가고 지금은 나에게 있어 가을이 되었다. 1년간 바쁘게 심고 가꾸었던 나의 텃밭에 작게나마 수확물이 생겼고 나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들을 심으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 '근업'하는 자세가 좋은 교사의 두 번째 자세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저 어제 산타할아버지랑 통화했어요! 꼭 선물을 주신대요.”
1학년 우리 반 아이가 아침부터 자랑을 했다.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는 아이의 순수한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혹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우와, 정말이야? 어떻게 하면 통화할 수 있어?”
산타와 통화를 했다던 아이를 놀리기는커녕 모두가 그 아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타와 통화하는 법을 검색해보았고 아이들은 휴대폰 앞으로 모여들었다. 숨을 죽이며 기다리던 아이들은 산타의 목소리가 들리자 너도 나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서영인데요, 어제 동생을 때렸는데 그건 실수였고 사과도 했어요. 선물 안 주시면 안 돼요.”
“저는 정현인데요, 저희 집은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오세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곧 행복해졌다. '이 순수한 아이들의 깨끗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오래도록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일이구나.'
가끔은 업무가 많아 아이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자꾸 다투는 아이들에게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역시 아이들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지금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행복한 것이 교사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의 마지막 자세이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교직 그 자체를 즐기는 '낙업'하는 자세이다. 교사로서의 첫 해, 1년이라는 시간이 앞으로 남은 교직 생활에 있어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겠지만, 남아 있는 수십년의 시간을 어떤 교사로 보낼 것인가 하는 마음가짐을 세워주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교사의 위치에서 '경업', '근업', '낙업'하는 자세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린 시절 선생님의 한 마디에 많은 위로를 받고 교사의 꿈을 키우게 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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