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 대전시 보건복지여성국장 |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나눔에도 한파가 겹친 탓인지 자선단체의 모금액이 작년의 절반 밖에 안 된다는 우울한 소식을 뉴스로 듣는다. 사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사랑의 온도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지인이 들려준 얘기가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지인이 전해준 사연은 이렇다.
미국 인디애나의 어느 초등학교에 짐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뇌종양에 걸려 방사선 치료과정에서 머리가 다 빠졌다고 한다. 다행히 치료경과가 좋아 퇴원하게 됐고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내일 짐이 온단다, 많이 위로해 주라'고 말했다. 여느 때 같으면 우르르 몰려 나갔을 애들이 그날만은 조용히 남아 어떻게 친구를 위로해 줄지 토론이 벌어졌다. 한 학생이 짐이 머리가 다 빠졌다고 하는데 우리도 머리를 깎고 오자고 제안 했다. 다음날 아침, 짐이 등교해 보니 모든 남자애들이 빡빡머리였다. 서로를 보고 다들 웃었지만 이내 교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짐도 울었고, 선생님도 울었고, 모든 애들이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삶이란 나 아닌 누군가에게 따뜻한 연탄한 장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마음이라는 것, 그것을 짐이라는 학생이 새삼 일깨워 주는 일화였다.
지난 4월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3 국내 나눔실태'에 의하면 2012년도 우리나라 개인기부 총액은 7조 73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9%이며, 우리 대전의 만 15세 이상 개인기부 참여율이 47.1%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또한 15세 이상 기부 참여자의 43.5%가 기부에 참여 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데 비해 미참여자는 28.2%에 불과해 나눌수록 더 풍요로운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몇해 전 미국의 한 언론이 복권당첨으로 1천만 달러 이상 돈벼락을 맞은 사람 가운데 5년 이상 된 70여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이들 중 80%가 넘는 56명은 복권당첨 이후 더 불행해졌고, 전보다 행복해 졌다고 답한 사람은 겨우 8명에 그쳤다. 큰 돈이 생기면서 차와 집을 바꾼 후 배우자까지 바꿀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가정이 파탄 난 경우가 허다했지만 생활수준을 그대로 유지했거나 사회단체에 기부한 사람들은 행복감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며칠 전 대전의 아너소사이어티 32호 회원이 탄생했지만 기부도시 1위 대전에도 나눔의 한파가 찾아 온 것일까?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의하면 지난 11월 20일부터 시작한 '희망2015 나눔 캠페인'이 시작한 이후 12월 11일 현재까지 모금액이 지난해의 절반수준으로 저조하다고 한다. 어느 한 해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매년 모금액이 꾸준히 증가했고, 목표치를 달성했는데 올해는 유독 사랑의 온도 상승 속도가 더뎌 안타깝다고 한다.
옛 어른들은 추울 때 든든히 먹으라 하셨다. 의학적으로 타당한 얘기라 한다. 따뜻한 음식이 몸에 들어가면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몸속의 장기들은 음식물을 소화시키면서 열을 발생시킨다. 더울 땐 이 온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영하의 날씨에서는 이 열의 존재를 우리 몸이 인식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은 온열동물이라서 추운 날 체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질병과 암 예방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사람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의 온도탑이 1도 오를 때마다 어디에선가 추위에 떨고 있을 이웃, 연탄 한 장 아쉬운 독거노인들에게는 크나큰 위안이 되고 삶의 희망이 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부는 거름과 같아서 쌓여 있을 때는 악취를 풍기지만 뿌려지면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했다.
그렇듯 한 사람의 조그마한 나눔이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다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든다. 진정한 사람은 어려울수록 진가가 발휘 된다. 기부 1위 도시 대전, 추울수록 빛이 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꽃을 든 손에는 향기가 남고 도움을 베푼 손에는 훈훈한 인정이 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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