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지식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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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지식과 지혜

박노권 목원대 총장

  • 승인 2014-12-17 13:55
  • 신문게재 2014-12-18 18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박노권 목원대 총장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송(宋)나라에 손 트는 데 바르는 연고를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낯선 사람이 찾아와 은(銀)백냥을 줄 테니 그 약의 처방을 팔라 하였다. 그는 여태까지 세탁업으로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돈을 주고 그의 약방문을 사겠다는 말에 기꺼이 그것을 넘겨주었다.

그 사람은 그 약방문을 가지고 오(吳)나라로 가서 오왕에게 손발이 자주 트는 병사들을 위해 쓸 것을 건의하였고 오왕은 그에게 함대의 지휘권을 주었다. 그해 겨울 오나라는 월(越)나라와 수전(水戰)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는 적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워 월나라에서 빼앗은 영토의 일부를 봉토로 받았다.

장자는 이 이야기의 끝에 “손 트는 데 쓰는 약방문은 하나이지만, 그것으로 한 사람은 큰 땅을 하사받았고 한 사람은 세탁업을 면치 못하였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지식과 그 지식을 크게 쓰는 지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예화이다. 한 사람은 지식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것의 용도를 자기 집 식구들로 한정하였기에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하였지만, 지혜가 있었던 다른 사람은 그것으로 한 나라도 구하고 돈과 명예까지 거머쥐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마구 정보가 뿌려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떤 정보는 하루 이틀이면 전 국민이 다 알게 될 정도로 급속하게 퍼진다. 물론, 그런 정보 중에는 쓰레기 같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귀중한 정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정보를 모르면 혼자만 손해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정보 검색하느라 분주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얻은 지식과 정보 때문에 우리는 그만큼 더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이는 현대의 모순으로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마음은 좁아졌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작아졌으며, 지식은 늘었지만 판단력은 줄어들었고, 전문가는 많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으며, 집은 더 좋아졌지만 가정은 깨어졌다”고 말한다. 모두가 지식을 얻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그것을 어떻게 자신과 이웃과 세계를 위해 유익하게 써야할지를 판단하는 지혜를 얻는 데는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지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하면 좋은 곳에 쓸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그것은 위대한 책을 읽고, 명사의 강연회를 찾아다니고, 좋은 대학을 다니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혜를 얻기 힘들다. 지혜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현실에 적용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필시 어떤 중대 결정이나 모험을 하게 되고, 때로는 실수도 저지르며 방향을 전환해야 할 일을 만나게 된다. 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데, 그 때가 바로 과정에 대한 분석과 관점의 전환과 방향의 수정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요컨대, 정보와 실생활 간의 균형을 유지할 때 비로소 지혜가 생긴다. 지식만 쌓아가지고는 절대로 지혜가 생길 수 없다.

요즘의 학생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식만 쌓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야 한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축적하는 셈인데, 그런 지식은 기억에 의존하는 정보에 불과하다. 그 중에 현실에 적용해 본 지식이 얼마나 될까? 몸으로 체험해 보지 않은 지식은 하얗게 내린 눈이 햇볕을 받아 사라지듯이 금세 잊히는 지식이다. 지식은 다양한 현실에 적용할 때 비로소 큰 쓸모를 지니게 되며, 그 큰 쓸모를 찾는 것이 바로 창조요 지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묵상과 반추의 시간이 필요하다. 방학이 바로 그것을 위한 시간이다. 이번 방학을 한 번 온통 지혜를 얻는 데만 써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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