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장동초 교장 |
“괜찮습니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이 노인정 주변의 쓰레기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청소를 하는 동안 언제 들어오셨는지 어르신들께서 노인정에 제법 모여 계셨다.
3월 1일자로 장동초등학교에 부임한 후 처음 뵙는 자리라서 어르신들께 인사부터 올렸다. 우리 아이들은 드디어 그 동안 연마한 끼를 보일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눈망울들이 초롱초롱하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를 지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사세요.” 우리 학교 귀염둥이들인 1학년과 2학년이 절을 올렸다.
“아아, 아얏!” 평소 동작이 느린 ○○이가 황급하게 절을 하다가 그만 앞이마를 방바닥에 살짝 찧고 말았다. 아픈 것도 잠시,○○이는 멋쩍은 듯 친구 뒤로 숨어버렸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다음은 3, 4학년의 오카리나 연주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언제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부모님 은혜'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자, 다소 들떠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그 순간에는 어르신들도 오래 전에 떠나신 부모님이나, 자녀 생각이 났을 터이다. 5, 6학년의 난타 연주와 고물거리는 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안마해 드리기까지 일정을 마무리하려는데 노인정 회장님께서 “교장 선생님!”하고 부르셨다. 회장님 옆으로 가니, 어르신께서 바지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내미셨다.
“이게 무엇인지요?” 가만히 보니 한장 한장 모아 꼬깃꼬깃 접어놓으신 것이 만 원짜리 지폐였다. “아니, 회장님! 왜 이런 것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교장 선생님, 내게 바람이 있어유. 우리 장동마을에는 장동초등학교가 제 일로 중요한 곳이지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수가 줄어들면서 학교 가 없어질까 우리들의 걱정이 참말로 많아유. 교장 선생님, 장동학교가 발전해야 우리 마을이 발전해유. 그러니, 아이들 좀 많이 늘리고 학교도 키워주세유. 늙은 우리들이야 무슨 힘이 있것씨유? 교장 선생님이 교육 잘하셔서 마을 좀 살려 주세유.”
회장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그 어르신의 학교 사랑하는 마음,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랑하는 마음의 참됨에 눈가가 젖어왔다.
'이 돈은 아마도 어르신의 자녀분이 용돈으로 주신 것을 귀한 곳에 쓰려 고 알뜰살뜰 모아 놓으신 것이리라. 그런데, 노인정 재롱잔치에 온 우리 아이들을 보며 학교를 키워 달라고 격려 차원에서 주시는 돈이구나.'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드리며, 그 돈을 소중하게 받았다.
“회장님, 그리고 이 곳에 모이신 어르신들, 제가 부족하지만 훌륭한 우리선생님, 교직원, 학부모님들과 힘을 모아 '학생들이 오고 싶은 학교, 학부모님들이 내 자녀를 보내고 싶은 학교, 교직원들이 보람을 느끼는 학교'로 더욱 발전시켜 보겠습니다. 어르신의 장동초등학교를 걱정하고 축복해주시는 마음 잊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날, 오후에 우리 장동교육가족은 모두 모였고, 도장골 노인정 회장님의 소중한 '사만 원의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주고, 그들의 꿈이 건강하게 움틀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울 것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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