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건양대 총장 |
예산안이 시한을 넘겨 통과되는 '비정상'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 왔기 때문에 국민들 역시 예산안을 시한에 맞춰 통과시킨 '정상'이 '비정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정치는 형체가 없으면서도 일상생활에 가까이 있는듯 하면서도 멀리 느껴지고, 또 멀리 있는 듯하면서도 아주 가까이 피부에 와닿곤 하는 생명체같은 존재다. 인간을 일희일비에 빠지게 하는가 하면 사자와 같은 투사로 만들기도 하고 양과 같이 온순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가까운 정치가 우리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대립과 충돌의 모습으로 불신과 불만의 대상이 되어왔다. 국민들에게 늘 부정적인 모습만 보여왔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수년전 어떤 기업인이 “한국은 경제는 1류인데 정치는 3류”라는 자조적인 주장을 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정치는 국가의 모든 기능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경제 사회 문화 국방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맏형과 같은 위상을 같는다. 그래서 클라우제비츠와 같은 장군 출신 전쟁학자도 “정치는 사회 모든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가 정치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군부의 민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일찌감치 선언한 바 있다.
그래서 정치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사회전반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기능을 가진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정치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바로 그 조율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인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에 대한 무한책임이 주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대통령의 입에서 최근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꾸어 말하면 요즘 대통령이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조율사 대통령이 번민으로 날을 지새우는 고통을 겪고 있다면 제대로된 조율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가장 평안하고 안정된 가운데 있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평안하고 안정되게 하는 임무는 비서에게 있다. 비서의 역할은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과 판단을 내리지는 않으나 대통령이 가장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같은 측면에서 최근 전현직 청와대 비서들간의 설전은 볼성사납기 그지없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지만, 단지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편안하게 해주어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통령의 불명예이자 국가의 불명예가 되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말썽의 중심에 있던 국회가 모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정상화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 청와대발 '비정상'으로 온사회가 다시 떠들썩해지고 또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안된다. 빨리 수습하여 평정심을 되찾아야 한다.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境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백성들이 먹고 사는데 어렵지 않고 죽음에 임해도 아무런 유감이 없게 해준다면, 이것이 곧 왕도를 실천하는 시작이다”라고 설파한 맹자의 말처럼 대통령은 항상 경계에 서있다. 한쪽으로 넘어지기 쉽다. 그것을 바치고 있는 것은 국민이다. 국가의 모든 기능들이 대통령이 제대로된 조율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떠받쳐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정치에서 희망을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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