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도 살아있던 게 아니었던 이씨는 대전에서 안정된 삶을 되찾게 됐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연락되지 않고 있다. 살아 있는 이씨가 행정상 사망자가 된 것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의 가족은 2003년 9월 이씨가 장기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경찰에 가출인 신고를 했다. 이후 5년이 지난 2009년 이씨의 가족은 또다시 이씨가 가출 후 소식이 끊겨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라며 가정법원에 실종선고심판청구를 했고, 법원은 그해 이씨에 대해 실종선고했다.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가 5년 이상 지속되면 법정대리인이나 검사의 청구로 가정법원이 실종선고를 할 수 있고, 법원의 선고를 읍·면·동사무소에 제출하면 법률·행정적 사망자가 된다.
행정상 사망자가 된 이씨는 지난 4월 6일 대전역에서 길을 헤매던 중 시민이 발견해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인계하면서 이씨의 사연이 알려지게 됐다.
발견 당시 이씨는 오른쪽 눈이 감긴 채 백내장이 있었고, 걷기에 불편할 정도로 발에 통증을 호소했다. 자신의 주소나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초기 치매증상도 있었다. 하지만, 법률·행정상 사망자인 이씨가 주민등록도 없이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는 거의 없었다.
이런 이씨를 구조하기 위해 나선게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와 충남대병원 그리고 동구청과 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였다. 노숙인지원센터는 먼저 이씨가 한 곳에 머물 수 있도록 긴급 잠자리를 제공하고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서에서 지문 10개를 조회해 이씨가 2009년 사망선고된 강원도 주소의 이씨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충남대병원 사회사업팀은 이씨가 앓는 지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동구청 역시 이씨가 가족의 외면으로 사망처리가 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씨에게 사회복지 임시번호를 부여해 당장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씨가 차츰 안정을 되찾는 동안 대한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는 지문조회 결과를 바탕으로 가정법원에 2009년 실종선고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지난달 22일 이씨의 실종선고를 취소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고, 1일 동구청은 이씨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이씨는 가족과 떨어져 지역의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이씨는 학대받은 노인에 가까운 사례였다”며 “관계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줘 이씨가 다시 살아있는 국민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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