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
함께 관람한 직원들과 갖게 되는 뒤풀이 자리는 언제나 느낌표로 시작되지만, 눈물겹게 애쓰는 대전 연극의 활성화에 어떤 도움이 있어야 할까, 하는 행정가로서의 고민이 진하디 진한 질문으로 남은 것이다. 지난 6년 간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은 여섯 개의 극단으로 하여금 전용 소극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각 3년씩 지원하였고, 이는 다른 여러 소극장의 설립 또는 운영에도 큰 자극제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대전 연극의 미래는? (답은 잠깐 미룬다.)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연극은 그 활동을 위한 경제적 조건과 환경이 훨씬 어렵다. 어느 나라든 예술가의 이중 직업 비율이 높다지만 연극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압도적이다. 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더욱 참혹하다. 지방에서 상경한 서울 대학로의 패기에 찬 신진 연극인들이 자장면 배달, 대리운전 따위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 얘깃거리도 안 된다. 반면 대전을 비롯한 모든 지역의 연극계는 젊은 배우, 젊은 연출가의 기근에 죽을 맛이다. 세대별 구성은 어느 분야든 바른 삼각형 모양이어야 하는데, 지역 연극계는 역삼각형인 것이다.
연극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떠받드는 가치 이외의 또 다른 지고한 가치에 대하여 깊고도 넓게 이해하게끔 한다. 이는 모든 예술의 공통속성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연극은 우리 삶의 여러 상황과 의미를 가장 현실적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어떤 도시의 문화적 삶의 활력 정도를 재는 데는 종합예술로서의 연극만한 것이 없다. 영국의 에딘버러, 프랑스의 아비뇽이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이제 다시 묻는다. 대전 연극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답은 짐작한 대로다.) 지금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라는 전제하에서지만 씁쓸하다.
연극인들에 의해서만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대전의 16개 극단과 16개 소극장 중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자생력을 갖춘 데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러한 데는 마땅히 칭찬해 주어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데라고 탓할 수는 없는 일. 반세기 전 이미 보몰과 보웬(W. J. Baumol & W. G. Bowen)에 의해 연극은 엄연한 시장실패의 영역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여러 지원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활짝 펼쳐지지 못하는 대전 연극의 임계점 돌파를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에서의 인큐베이팅과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 가령 연극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필요성을 지적하는 탁월한 연출력이 단기적 재정 지원과 이에 따른 숫자 중심의 성과 놀음으로 어찌 가능하겠는가. 이에 내년 봄 개관하는 대전예술가의집 블랙박스극장에서는 연극 아카데미를 해봄 직하다. 당장 부족한 공연 공간을 제공하는 대관 극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연출, 연기, 무대기술, 경영·기획의 발전을 위한 교육 극장으로서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말이렷다.
아울러 해묵은 숙제지만, 이제야말로 시립극단을 공론화할 때다. 재정 형편상 영 어렵다면 상근단원제가 아닌 예술감독, 행정경영·기획인력 등 3인 정도 규모의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지역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초빙 연출, 오디션에 의한 배우 캐스팅 등 과정을 거쳐 대극장·중극장용 ‘메이드 인 대전’ 연극이 지속적으로 탄생된다면, 대전의 소극장, 나아가 연극 장르 전반에 끼치는 정(正)의 효과는 태양과 같을 것이다. 대전시립극단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리스, 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상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쿵! 쾅! 쿵!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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