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이관형 신임 회장의 취임식이 열리던 지난 10월31일 오전 서구 둔산동 민석타워 3층 법무법인 내일 이관형 대표변호사 사무실에서 이 회장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날 오후 3시 옛 충남도청사 본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 현장을 취재했다. 이후 지난 6일 이관형 대표변호사 사무실에서 이 회장으로부터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에 취임한 소감과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주유천하(周遊天下)였지만… 사랑의열매 회장 일에 최선=“공자님이 주유천하했듯이 저도 노년에는 천하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요.(하하하) 이제 제 나이도 예순다섯입니다. 모든 일을 다 내려놓고 쉬고 싶었는데 고등학교와 대학교 8년 선배님이신 신한철 직전 회장님(공주고와 고려대)이 아주 오래전부터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직을 맡아달라고 간청을 하셨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워낙 많아 부담스러웠는데 대선배님의 간절한 요청을 뿌리칠 수가 없더군요. 제 고향 공주를 각별히 많이 사랑하기도 하지요(하하하). 대학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있고, 판사 시절에도 전근을 많이 다니다보니 저의 뿌리인 우리 지역을 위해 한 일이 없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던 차이기도 했죠. 예전에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배분위원을 한 경험도 있고 해서 선배님 뜻을 받들어 회장직을 맡게 됐는데요. 이번달 제 일정표를 받아보니 정말 하루도 쉴틈 없이 너무너무 바쁘네요. 16개 시군을 매일 돌며 인사 나누고 연말에는 희망나눔캠페인을 벌여야되니 더 분주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군요. 훌훌 털고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회장 임기 동안은 깨끗이 접어두고 제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죠. 이왕 맡은 이상 저를 추천해주신 선배님과 도민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회장은 “266만 충남도민 여러분이 한푼 두푼 낸 기금을 바탕으로 1인당 모금액이 전국 1위를 차지하는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 된 것에 대해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영광스런 자리에서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노력에 집중해 연중 정기 기부자 참여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고, 지역의 사회지도층들이 솔선수범해 기부할 수 있도록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제가 취임하자마자 천안에서 문은수 충남아너소사이어티클럽 회장님 권유로 다섯분의 아너소사이어티가 동시에 가입을 해주셔서 무엇보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모금회가 지역속에서 살아 숨쉬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사회복지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유관기관과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림, 영화, 운동, 스포츠 중계 좋아하는 법조인… 엘리베이터 타면 웃는 습관이 스트레스 해소책=서구 둔산동 민석타워 3층에 위치한 법무법인 내일의 대표변호사인 이관형 신임회장 방을 들어서면 사방 벽면에 조평휘, 심향 박승무, 이인영, 박영선, 김동유, 유동조 화백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장암 이곤순 서예가의 액자는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 하단에 모셔져 있다. 작품마다 이관형 회장과 인간적인 연을 맺고 있는 작가들과의 사연이 담겨있다고 했다. 고 이종수 화백과의 운명적인 만남도 있었다. 위암 말기의 이종수 화백이 돌아가시기 한 두달전 뵙고 그림을 약속받았는데 그 분이 전시중 돌아가시는 바람에 약속했던 그림은 이종수 화백 부인으로부터 이 화백 사후에 전달받은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이관형 회장은 독특한 취미도 갖고 있다. 출근할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울을 보고 혼자 웃는 습관이 있다. 거울 보며 크게 웃는게 스트레스 해소책이라고 했다.
또하나의 독특한 건강법이 있다. 그가 사는 노은동 열매마을아파트에서 월드컵경기장쪽 계룡산 줄기 방가봉을 향해 그의 시조인 전주 이씨 태조 이성계를 생각하면서 108배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108배가 아니라 1배를 할때마다 외국 배우 이름을 외운다. 오드리 햅번, 제니퍼 로렌즈, 비비안 리, 그레이스 캘리, 그레고리 펙, 줄리아 로버츠, 톰 행크스, 톰 크루즈 등등 외국의 영화 배우 이름들을 108배 하는 동안 하루 108명씩 350여명의 배우 이름을 돌아가면서 외우는게 그만의 독특한 치매퇴치법이다.
이 회장은 구기 종목 운동도 다 좋아한다. 특이한 점은 야구, 배구, 농구 등 온갖 구기종목 경기가 열릴때마다 스포츠중계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해설위원보다 이 회장의 스포츠중계가 더 빠르고 정확하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인정 많고 여린 성격탓에 대전시립무용단 후원회장을 비롯해 스카우트 대전연맹장까지 맡아 무용단원들과 스테프와 후원회원들, 스카우트 담당 교사들 수고한다고 수시로 격려해주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밥을 사주는게 그의 주요 업무가 됐다. 너무나 열심히 잘 활동해주는 스카우트 대원들과 교사들이 고마워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이 회장은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붓는다. 그가 맡은 단체는 다 잘 되는 이유가 있다. 잔소리는 줄이고, 간섭은 안하는게 비법이란다. 인정 많고 사람 좋아하고 활동 범위가 넓다보니 젊은 시절에는 술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통풍이 있어 음주와 육식을 삼가고, 콩류와 버섯, 등푸른 생선도 멀리하는 식이요법을 철저히 한다. 담배는 끊은지 30년이다. 여기엔 알뜰 살뜰한 내조의 여왕인 부인의 보살핌이 큰 몫을 했다.
취미생활로 운동과 등산, 산보, 영화 보기, 책읽기, 그림 보기를 즐기는 그는 인덕과 인복이 많아 젊은 시절부터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고려대학 시절 고시 준비를 할때 하숙집 아주머니는 그를 위해 따로 따뜻한 밥을 지어줄 정도였다고 한다.
▲판사 시절과 변호사 시절=사법고시에서 1년에 60명을 뽑던 1973년 그 시절, 자부심 하나만을 갖고 살았다. 그때당시 대전고 출신 고시합격자가 70여명에 달했을때 유일한 공주고 출신이었던 그는 누구보다 모교를 사랑했기에 자신감있고 당당하게 활동하면서 어디를 가던지 뛰어난 리더가 됐다.
그가 판사 시절 김영준 대법관을 모셨을때 이야기다.
“제가 사형을 구형한 피고인에 대해 김영준 대법관님이 사형선고를 확정했다고 말씀하시는겁니다. 이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 같았어요. 정의를 너무 앞세우면 세상이 꺾이는 수도 있구나 생각했죠. 판사는 굉장히 고생스러운 자리입니다. 판사 시절 동안은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롭고 고독한 자리였죠.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억울한 사람이 저의 도움을 받아 잘 될때 보람이 큽니다. 이와 반대로 이길만한 사건이고, 사정이 딱한데도 결과적으로 잘 안될때는 많이 속상하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판사 시절이 고뇌가 훨씬 심했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판사 시절 제가 판단했던 사건들은 바로 바로 잊어버리는데 반해 변호한 사건들은 절대 안 잊혀지더군요.”
이 회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고건 전 국무총리로부터 받은 모범납세자 상패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금을 잘냈다고 받은 상이에요. 제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상이기도 하지요.(하하하)”
정치권의 러브콜도 여러차례 받은 그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고사했다.
“법관은 법관으로서의 자세가 있습니다. 법관은 정치하는 사람을 만나면 안됩니다. 저 역시 근방에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차장 검사시절 선출직에 나가라고 권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선거를 치르고 국회의원을 하는 일은 전혀 제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판사로서 판결할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어렵거나 못가졌거나 한 피고인에 대해 도움의 판결을 줬을때죠.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동정심이 있어서 도와주는 판결을 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선고날 따끔하게 훈계해서 내보냈는데 3개월후 외동아들을 용서해줘서 고맙다며 어느 노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집에서 직접 재배했다는 과일을 갖고 오신 이 분이 '판사님 고맙습니다'하고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하시는 겁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래도록 제 가슴에 남아있는 추억의 한 부분이죠.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살고 싶은게 꿈입니다.”
대담=한성일 취재4부장(부국장)·사진=금상진 기자
▲이관형 회장은=1949년 공주시 신풍면에서 초등학교 교장 출신 아버지의 8남매중 셋째로 출생했다. 외우는 암기 과목에 능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공주고와 고려대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78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1984년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장, 1987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1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장, 1997년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2001년 대전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1년부터 법무법인 내일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TJB 시청자 위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한밭대학교, 우송대학교, 한국영상정보대학교 고문, 스카우트 대전연맹장, 대전시선관위 방송토론위원장, 대전시립무용단 후원회장으로도 활동중이다.
물처럼 흐르듯 사는게 좋다는 그는 대고모님 소개로 만난 부인이 자신의 말도 잘 들을 것 같고 착해보여서 결혼했다고 했다. 부모 도움 없이 힘들었던 판사시절 잘 견뎌준 아내가 고맙다는 이 회장은 슬하의 두 딸에게도 지혜롭게 살라는 부모의 뜻을 담아 혜성과 지성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큰 딸은 결혼해 회계사 사위와 살고 있고, 작은딸은 독립영화 감독으로 대학에 출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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