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접촉의 미학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접촉의 미학

김영석 전민초 교장

  • 승인 2014-11-04 20:41
  • 신문게재 2014-11-05 18면
  • 김영석 전민초 교장김영석 전민초 교장
▲ 김영석 전민초 교장
▲ 김영석 전민초 교장
언제부터인가 '빨리빨리' 서두르는 문화가 삶의 여유를 빼앗았고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바쁜 문화는 우리 삶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끼친 영향이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혹자는 '빨리빨리'가 눈부신 사회변화와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도 하고 개인 이기적 안전 불감과 사회적 기본질서를 비롯한 양심적 행동의 퇴보를 아쉬워하면서 최근 크고 작은 안전사고의 원인이 되어 국가적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결부시키기도 한다.

'百年之大計'라는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100년이 아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쏟아 낸 각종 계획들이 어느 날 뜬금없이 요란 떨며 생성되었다가 조용히 사라지기 일쑤다.
언젠가 어느 교육 장소에서 던진 강사의 질문이 생각난다. '20여년 전쯤의 이야기라 했다. 무지무지 사랑했던 젊은이 한 쌍이 그리 힘들다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했고 서울과 여수에 첫 발령을 받았다. 지금 같으면 승용차나 KTX가 있어 약간의 수고와 시간을 투자하면 단 몇 시간 안에 만날 수 도 있겠지만 그 때만 해도 쉽지 않은 거리에다 처음 시작하는 공무원생활로 짬 내기는 매우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대신 1주일에 두 세 번씩 편지를 쓰며 사랑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2년 후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듣고 있는데 갑자기 질문이 날아왔다. “자, 누구와 결혼을 했을 것 같아요?” “그야 뭐 당연한 거 아니야? 사랑하는 남자, 편지를 주고받던 그 남자랑 결혼을 했겠지.” 답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집배원과 결혼을 했다는 거였다. 허탈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버스나 지하철 아니 장소 불문, 눈에 뜨이는 사람들 모습이 온통 불편해 보이는 고정된 자세로 무엇인가에 골몰한다. 모두들 손가락을 조물조물 자기중심 접속 중이다. 스마트폰의 늪에 빠진 얼굴 표정을 보노라면 두려움마저 느낀다. 많은 것이 생략된 초간편, 다기능 디지털, 스마트를 향유하면서도 가끔 마음이 허전기가 들고 사람냄새가 그리워진다. 불편함도 작은 노력으로 극복하고 서로에게 시선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던 접촉의 시절, 아날로그가 간절한 때문이리라.

어느 사이 가을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가을이 되면 '까칠하다'란 표현을 자주 하기도 듣기도 한다. '요즘 무리하는 거 아니야? 얼굴이 까칠해 보여' 건강을 걱정해 주는 말이다. '요즘 날 대하는 게 까칠하게 느껴져' 행동이나 말이 탐탁해 보이지 않아 부정적 표현으로 내 뱉는 말이다. 아침 짙은 안개 속을 헤집고 불쑥불쑥 교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이들…. 이들에겐 '까칠하다'란 표현이 무색하다. 무더위 여름 땡볕에도 지치지 않고 운동장을 점령하더니 지난 봄 보다 한 뼘 두 뼘 키높이 운동화를 신은 듯 가파른 성장세를 느끼게 하는 것도 가을이다.

요즘 교내 스포츠클럽대회 기간을 맞아 운동장은 쉼 없이 꿈틀거리며 요동친다. 뒤섞여 접촉하며 함빡 웃기도 하고 목청껏 부르짖는 건강한 외침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함께 웃는다. 하루 일과 중 쉴 수 있는 짧은 시간이라도 생기면 아이들은 내 몰지 않아도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너른 초원의 양떼를 보듯 운동장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기들이 만들어가는 질서와 배려와 평화를 느낀다. 가뿐 호흡이 쏟아놓은 입김이 마치 거북선이 연기를 내뿜으며 적선(敵船)으로 돌진하듯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에 '사람의 관계는 접속이 아닌 접촉의 관계' 이어야 한다는 답을 선생님은 안내해 주고 있다. 아이와 아이, 아이와 선생님이 접촉할 수 있는 학교 운동장은 늘 생기가 넘친다. 학교 구석구석이 내일도 어제와 같은 오늘의 건강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키워주는 요람이다.
몸과 마음을 접촉하며 내 달리는 아이들, 머리가 닿을까봐 하늘은 아예 쪽빛을 띠고 드높게 올려 져 있다. 그런 하늘을 보면서 아이들은 겸손함도 배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긴박했던 6시간] 윤 대통령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2.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국회 본회의 가결
  3. 계엄사 "국회 정당 등 모든 정치활동 금지"
  4. 계엄사 "언론·출판 통제…파업 의료인 48시간 내 본업 복귀해야" [전문]
  5. 충남대, 공주대와 통합 관련 내부소통… 학생들은 반대 목소리
  1. "한밤중 계엄령" 대전시-자치구 화들짝… 관가 종일 술렁
  2.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3. 갑작스런 비상계엄령에 대전도 후폭풍… 8년 만에 촛불 들었다
  4.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5. 계엄 선포에 과학기술계도 분노 "헌정질서 훼손, 당장 하야하라"

헤드라인 뉴스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정기국회 등 올 연말 여의도에서 추진 동력 확보가 시급한 충청 현안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시 연기된 2차 공공기관 이전부터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충남 아산경찰병원 건립,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 중부고속도로 확장까지 지역에 즐비한 현안들이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 지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단 지적이다.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4일 새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등 밤사이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갔..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