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석 전민초 교장 |
'百年之大計'라는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100년이 아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쏟아 낸 각종 계획들이 어느 날 뜬금없이 요란 떨며 생성되었다가 조용히 사라지기 일쑤다.
언젠가 어느 교육 장소에서 던진 강사의 질문이 생각난다. '20여년 전쯤의 이야기라 했다. 무지무지 사랑했던 젊은이 한 쌍이 그리 힘들다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했고 서울과 여수에 첫 발령을 받았다. 지금 같으면 승용차나 KTX가 있어 약간의 수고와 시간을 투자하면 단 몇 시간 안에 만날 수 도 있겠지만 그 때만 해도 쉽지 않은 거리에다 처음 시작하는 공무원생활로 짬 내기는 매우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대신 1주일에 두 세 번씩 편지를 쓰며 사랑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2년 후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듣고 있는데 갑자기 질문이 날아왔다. “자, 누구와 결혼을 했을 것 같아요?” “그야 뭐 당연한 거 아니야? 사랑하는 남자, 편지를 주고받던 그 남자랑 결혼을 했겠지.” 답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집배원과 결혼을 했다는 거였다. 허탈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버스나 지하철 아니 장소 불문, 눈에 뜨이는 사람들 모습이 온통 불편해 보이는 고정된 자세로 무엇인가에 골몰한다. 모두들 손가락을 조물조물 자기중심 접속 중이다. 스마트폰의 늪에 빠진 얼굴 표정을 보노라면 두려움마저 느낀다. 많은 것이 생략된 초간편, 다기능 디지털, 스마트를 향유하면서도 가끔 마음이 허전기가 들고 사람냄새가 그리워진다. 불편함도 작은 노력으로 극복하고 서로에게 시선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던 접촉의 시절, 아날로그가 간절한 때문이리라.
어느 사이 가을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가을이 되면 '까칠하다'란 표현을 자주 하기도 듣기도 한다. '요즘 무리하는 거 아니야? 얼굴이 까칠해 보여' 건강을 걱정해 주는 말이다. '요즘 날 대하는 게 까칠하게 느껴져' 행동이나 말이 탐탁해 보이지 않아 부정적 표현으로 내 뱉는 말이다. 아침 짙은 안개 속을 헤집고 불쑥불쑥 교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이들…. 이들에겐 '까칠하다'란 표현이 무색하다. 무더위 여름 땡볕에도 지치지 않고 운동장을 점령하더니 지난 봄 보다 한 뼘 두 뼘 키높이 운동화를 신은 듯 가파른 성장세를 느끼게 하는 것도 가을이다.
요즘 교내 스포츠클럽대회 기간을 맞아 운동장은 쉼 없이 꿈틀거리며 요동친다. 뒤섞여 접촉하며 함빡 웃기도 하고 목청껏 부르짖는 건강한 외침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함께 웃는다. 하루 일과 중 쉴 수 있는 짧은 시간이라도 생기면 아이들은 내 몰지 않아도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너른 초원의 양떼를 보듯 운동장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기들이 만들어가는 질서와 배려와 평화를 느낀다. 가뿐 호흡이 쏟아놓은 입김이 마치 거북선이 연기를 내뿜으며 적선(敵船)으로 돌진하듯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에 '사람의 관계는 접속이 아닌 접촉의 관계' 이어야 한다는 답을 선생님은 안내해 주고 있다. 아이와 아이, 아이와 선생님이 접촉할 수 있는 학교 운동장은 늘 생기가 넘친다. 학교 구석구석이 내일도 어제와 같은 오늘의 건강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키워주는 요람이다.
몸과 마음을 접촉하며 내 달리는 아이들, 머리가 닿을까봐 하늘은 아예 쪽빛을 띠고 드높게 올려 져 있다. 그런 하늘을 보면서 아이들은 겸손함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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