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18세기 말 일본을 여행한 서유소(徐有素)의 연행잡록(燕行雜錄)에 보면 “일본인의 성정은 매우 조급하고 경박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있으면 뱁새처럼 굴고… 도량이 넓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인을 마치 속 좁은 밴댕이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이는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는 일본인들을 '쪽바리'라고 비하(卑下)해 왔다. 한국과 일본의 운동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국민이 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하기도 한다. 한일전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학교든 직장이든 다들 결과에 대한 소식을 궁금해 한다. 보통 한국이 이기면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만 같은 벅찬 감동이 밀려오지만, 행여나 지는 날이면 괜히 침울해지고 다시 반일감정이 싹 터 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반일감정만 갖고 있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선진국 일본에 대한 동경(憧憬)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일제 샤프나 소형카세트플레이어인 워크맨을 갖고 있는 친구를 보면 부러워했고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학생들이야 필기구 정도였겠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소니와 내셔널 사(社) 전자제품을 자기 집 가장 좋은 거실에 모셔 놓고는 손님들에게 자랑을 일삼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생활속에서 일본어는 또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공구리(concrete, 양회반죽), 바케쓰(bucket, 들통), 밤바(bumper, 완충기), 화이바(fiber, 안전모) 등 건축업계에서 쓰이는 일본어가 있는가 하면, 닭도리탕(-鳥(とり)湯, 닭볶음탕), 모치떡(餠(もち), 찹쌀떡), 비까번쩍하다(ぴか, 번쩍번쩍하다), 뽀록나다(褸(ぼろ), 드러나다), 왔다리 갔다리(-たり -たり, 왔다 갔다) 등 일본어 단어가 순 우리말이나 한자어와 함께 뒤섞여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일본식 영어는 또 어떤가? 도란스(transformer, 변압기), 레지(register, 다방 종업원), 오바(overcoat, 외투), 백미라(back mirror, 뒷거울), 올드미스(old miss, 노처녀), 워카(walker, 군화) 등이 그렇고, 그 외 하다 못해 당구용어 등은 상당수가 지금도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아까다마(빨간공), 오마와시(크게 돌리기), 쿠션(벽), 히네루(회전), 가라쿠(벽돌리기), 갸꾸(반대치기), 겐세이(견제), 기리까시(비껴치기), 나미(얇게치기), 다마(공), 다이(당구대), 맛세이(찍어치기) 등이 그렇다.
우리나라는 광복 직후부터 '국어 정화'라 하여 대대적으로 일본어 잔재를 우리말로 순화해 왔다. 당시의 언어순화가 주로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면서 지금까지의 일본어 순화는 상당한 실효를 거둘 수 있었고, TV 방송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본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자리, 즉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아직도 많은 일본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런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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