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길 잃은 치매 노인의 보따리에 담긴 사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부산의 한 경찰서, 남루한 행색의 할머니가 몇 시간동안 같은 자리를 배회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이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름도 집 주소도 몰랐다. 다만 “우리 딸이 애를 낳고 병원에 있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치매환자였다. 경찰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녀를 딸이 있는 병원으로 안내했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소중히 끌어안고 있던 보따리를 주섬주섬 풀기 시작했다. 보따리 안에서 나온 것은 이미 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흰 쌀밥, 나물반찬, 그리고 몸조리에 필요한 두툼한 이불 한 채. 경찰과 함께 들이닥친 친정엄마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을 보듬는 어머니 모습에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삶의 기억은 모두 잃어버렸지만 노모가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딸의 존재였던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도마뱀의 머리와 같고 자식에게 부모는 그 꼬리와 같다고 한다. 최후의 순간이 되면 자식은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 듯 부모를 버릴 수 있지만, 부모는 죽음 앞에서도 자식을 버리지 못 한다는 이야기다. 그간의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 아이와 잠시잠깐 통화가 안 되도 온갖 걱정에 안달복달하는 엄마이면서도, 정작 부모님의 부재중 전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덮어두는 딸이었고, 바쁜 농사철 일손 도우러 내려가겠다는 말에 한사코 손사래 치던 마음을 내심 반겼는지 모른다. 한없이 미안하고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흐드러진 들꽃, 단풍이 다 지기 전에 부모님과의 짧은 가을여행 계획해 볼 참이다. 바쁜데 무슨 여행이냐며 두 손 저어 마다해도 이번만큼은 막무가내 심산이다.
황미란ㆍ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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