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형법상 모욕죄를 두고 있지 않다. 나아가 명예훼손죄도 폐지하거나 사문화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형법 제311조로 '모욕죄'를 규정하고,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을 모욕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명예훼손을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지극히 후진 국가들만의 저급한 문화라는 평가가 법조와 학계의 견해이지만, 우리나라 형법은 일반 명예훼손죄, 사자 명예훼손죄, 출판물 명예훼손죄를 따로 규정해 처벌 방법과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에도 서슬이 퍼런 '사이버 명예훼손죄' 규정을 두어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현행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 모욕죄' 규정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미디어 관련법 처리 시점에서 여당 의원들은 두 법을 개정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려고 시도했다. 나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장윤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사이버 모욕죄를 범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모욕죄를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 강화하는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려는 발상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다른 사람을 모욕한 대가로 춥고 더운 감옥에 2년이나 3년씩 가두어두겠다는 처벌 의지는 국회의원을 뽑아 준 유권자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법안은 공통적으로 사이버 모욕죄를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의 죄로 규정했다. 현행 형법상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이지만,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형법ㆍ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하고 처벌이 가능하도록 뜯어고쳤던 것이다. 자신을 선출해 준 유권자 시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을 비판하거나 모욕하더라도 현행 형법의 모욕죄 규정으로는 유권자들의 손가락을 처벌하기 쉽지 않다. 친고죄 규정 때문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친히 유권자 시민을 처벌해 달라는 고소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의사불벌의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면 정치권력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눈감고 앉아서 비판 글을 게재한 유권자들의 손가락을 감옥에 이삼년씩 가둘 수 있게 될 터였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반의사불벌의 죄로 다스리는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규정의 해악은 그토록 크고 험하다. 작년 6월 헌법재판소는 현행 형법의 모욕죄 규정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등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1년 징역형도 비교적 가볍다고 판단했다. 소수의 헌법재판관들은 모욕의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해 비판과 풍자, 해학을 담은 표현들까지도 처벌할 우려가 있다며 헌법에 위배되므로 폐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모욕적 표현일지라도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에 맡기거나 민사책임으로 해결하자는 대안도 내놨다. 현행 모욕죄를 폐지해 법률 역사관에 모시는 것이 예우일진대, 1년 징역형은 가볍다거나 반의사불벌의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 유권자 시민을 수년간 감옥에 가두겠다고 위협하려는 입법적 시도야 말로 모욕죄에 대한 모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