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늙을수록 할 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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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늙을수록 할 일이 있어야 한다

김형태 한남대 총장

  • 승인 2014-10-22 14:13
  • 신문게재 2014-10-23 16면
  • 김형태 한남대 총장김형태 한남대 총장
▲김형태 한남대 총장
▲김형태 한남대 총장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초년 성공, 중년 상처, 그리고 노인 빈곤이라 한다. 100세 수를 누리는 것은 축복이지만, 건강하고 경제적 자립이 보장되어야 되는 일이다. 미국의 한 대학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요양원에서 실험을 하였다. A그룹 노인들에게는 자신의 뜻대로 화초를 6개월 동안 직접 돌보도록 하였다. 그룹 노인들에게는 같은 기간 화초를 돌보는 직원을 투입하고, 노인들은 그냥 바라보게만 하였다. C그룹 노인들에게는 3개월 동안 자기 마음대로 기르게 한 뒤, 나머지 3개월은 직원을 투입해 기르게 하고, 노인들은 그냥 보게만 하였다.

6개월 후 의사들이 요양원에 가서 세 그룹의 노인들 간 사망률을 조사해 보았더니 자활한 A그룹에 비해 B그룹은 사망률이 2배쯤 높았고, C그룹은 3배 이상 높았다. 노인이 될수록 할 일이 있고 환경이나 대상에 대해 관리권 내지 통제권이 있는가 없는가가 수명연장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사례이다.

황정순 씨가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어”라는 시를 남겼다.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어 /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 개울 물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 풀숲에 담긴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 삐걱거리는 허리 쭈욱 펴 보이며 /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 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할 거야 / 이때 나직이 모차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 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 이제 잉크 냄새나는 신문을 볼 거야 /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 당신 무릎을 베고 오래도록 낮잠도 자야지 /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볼까…? / 어쩌면 그때는 창밖의 많은 것들 /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울 거야 /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 보고 싶어 /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보고 싶어 /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라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었어… /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느니… / 살아하기 너무 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 겨울에 백화점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 거야 / 햇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 때… / 봄엔 당신 연베이지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 빛 실크 스카프 매고 /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까? / 드라이빙 이스 데이지 같은… /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넛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 장 찍을까 /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 두어야지 / 그리고 그리고 당신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책 한 아름 사서 서재로 가는 거야 / 난 당신 책 읽는 모습 보며 화폭 속에, 내 가슴속에 당신의 모습 담아 영원히 영원히 간직할 거야 / 나 늙으면 그렇게 당신과 함께 살아 보고 싶어 /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 보고 싶어.”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身老心不老). 그러니까 나이 들어도 품격을 유지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점잖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노인으로 처신하자. 젊은이는 늙어보지 못했지만, 노인들은 젊어봤었다. 젊은이는 빨리 갈 수 있지만, 노인은 지름길을 안다. 그래서 노인은 도서관 하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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