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은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을 삶의 지표로 삼아서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겨레의 할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노심초사 하였다. 이를 위해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 특정한 책을 다 읽고 외우고 난 뒤 더 완벽을 꾀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책을 찢어 씹어 먹거나 태운 가루를 물에 타먹기도 했다는 풍문들이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였듯이, 옛 선비들은 책을 다 읽거나 외우면 그 기념으로 책을 찢어서 노끈을 꼬아 바구니를 엮어서 소중하게 간직했다고 한다. 이러한 맥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지승'이라고 하는 공예의 한 분야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열심히 갈고 닦아 나라와 겨레를 위해 나랏일을 하는 선비들이 있었는가 하면 기회를 얻지 못하여 초야에 묻혀 신실한 삶을 영위해갔던 선비들도 있었다.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들은 일상생활을 더욱 근검하게 영위하면서 다른 백성들의 귀감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그런 까닭에 잘 먹고 잘 입는 호의호식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거수일투족은 물론이고 생활용품들도 소박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갈필과 갈포였다. 갈필과 갈포는 칡넝쿨을 잘 손질하여 그 섬유를 가지고 만든 붓과 천이었다.
초야에 묻혀서 나라와 겨레의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라 여겨 좋은 붓과 좋은 옷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칡넝쿨을 손질하여 만든 붓과 천은 투박하고 거칠기가 이를 데 없었다. 먹물이 잘 먹지도 않고 글씨가 잘 써지지도 않는 거친 붓으로 글씨를 쓰면서 선비정신을 몸소 갈고 닦았다.
몸에 걸치면 피부가 긁힐 정도로 거친 칡넝쿨 천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서 고행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흐뜨러지지 않도록 경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른 일상의 좋은 붓과 옷들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어졌지만 칡넝쿨 붓과 천과 옷은 손수 만들고 짜서 지었다. 손수 만드는 일 그 자체가 곧 수신(修身)하는 길이었다. 이렇듯 선비들은 언제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길을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였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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