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CEO 인터뷰] 박희원 (주)라이온켐텍 회장

[성공 CEO 인터뷰] 박희원 (주)라이온켐텍 회장

맨손으로 시작, 중견기업 '우뚝'… 드라마 속 인생역전 주인공으로 합성왁스 시장점유율 국내 1위ㆍ인조대리석 3위… 60여개국 수출

  • 승인 2014-10-19 14:14
  • 신문게재 2014-10-20 9면
  • 대담=백운석 편집국장ㆍ정리=박전규ㆍ사진=이성희 기?대담=백운석 편집국장ㆍ정리=박전규ㆍ사진=이성희 기?

초등학교 시절인 열두살 때 아버지가 돌아셔서 형ㆍ동생 등 6남매가 먹고살기 위해 산업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막노동은 물론 문구점 점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청년이 된 그는 남들이 안 하는 일 찾아서 40여년의 피나는 노력 끝에 글로벌 중견기업 사장이 됐다. 부채비율이 한 때 2700%까지 올라가 은행권으로부터 상환독촉을 받을 땐 자살하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대전 대덕산업단지 내 위치하고 있는 (주)라이온켐텍 박희원 회장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다.

오랜 경기침체로 우리사회는 ‘먹고 살기 팍팍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더욱이 지난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수개월째 사회활동이 부진하면서 국내 경제는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깊은 늪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일부 경제인들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박희원 회장이 이끄는 라이온켐텍은 지역 경제발전에 기여하며, 대전이 자랑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소리없이 성장하고 있다.

(주)라이온켐텍은 지난 1973년 설립됐다. 박회장이 24살때다. 젊은 열정과 패기를 앞세워 맨주먹 하나만으로 시작한 기업은 40년이 지난 현재 수출 5000만 달러, 매출 1000억원을 넘는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어린시절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싸움, 경영자로서의 수많은 역경과 우여곡절을 딛고 보란듯이 당당히 일어선 (주)라이온켐텍 박희원 회장을 만나 그의 인생이야기와 기업 성장과정 등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산업현장 누벼

박희원 회장은 1949년 4월 대전 갱이마을(지금의 동구 가양동)에서 6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떠맡게 된다. 박 회장은 “철도청에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갑작히 돌아가셨어요. 제가 6남매를 먹여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지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가난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동생들의 영양실조, 눈물이 날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과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고 말했다.

어린시절 박 회장은 일을 잘하는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전 이미 직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배달업, 문구점 점원 등 안해 본 일이 없고, 안 가본 곳도 없을 정도다. 항상 적극적인 자세로 직장생활에 임했던 그는 20대 초반 문구점 점원 시절 지역 관공서를 비롯해 조폐공사, 전매청, 교육청 등을 출입하면서 인맥을 넓혔고, 사업에 눈도 뜨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박 회장은 지인의 소개로 화학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근근이 모았던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화학공장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울며겨자먹기로 인부 5명과 공장을 인수받았다. 새한화학공업사다. 그는 1973년 3월 사업과 이렇게 연을 맺는다. 서구 도마동에 소재한 새한화학공업사는 이후 중구 산성동(77~79년)과 호동에 이어, 1982년 대전산업단지 내 2공단으로 입주하며, 상호를 라이온켐텍(법인 기업)으로 변경했다.

현재 라이온켐텍은 인조대리석과 합성왁스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인조대리석은 국내 3위의 시장점유율, 합성왁스는 국내 1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화학분야의 대표적인 중소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액 1031억원, 수출 5000만불탑 수상에 이어, 2013년 11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박희원 회장은 지난 40여년간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바탕으로 라이온켐텍을 유망한 글로벌 화학 중견기업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강한 리더십과 풍부한 경영노하우로 선ㆍ후배 경영자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후배 경영자에게는 연구개발을 독려함으로써 창의적 기업경영정신을 불어넣고 있다.

- 어린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요.

“14살 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고시학원에 다녔어요. 당시 왕십리에서 광나루까지 철길을 따라 걸어서 다녔죠.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자라면서의 나를 성공하게 했죠. 이후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해봤습니다. 기계ㆍ전기 업무 등을 조금 볼 줄 알았고, 관련 교육을 통해 분야 업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어요.”

- 군대생활은 어디에서 하셨나요.

“지난 66년 7월25일부터 69년 7월19일까지 5사단에서 육군 포병으로 37개월간 근무했습니다. 군대시절 5사단 영웅으로 통했죠.(웃음) 제대 2개월을 남기고 포병 146명을 훈련시키기도 했어요. 군대에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하면 된다’는 신념이 생겼죠.”

- 기업 창업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처음에는 문구점 사업으로 시작했어요. 사업시작 6개월 정도 지난 24살에 지역 교육청 공무원의 소개로 화학공장에 200만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사기를 당했어요. 날벼락 같은 일이었죠. 그후 오기가 생겨서 화학에 관련한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관련분야의 연구를 2년 정도 하면서 제품도 만들었고 대한제지 등에 제품을 납품하게 됐습니다. 당시 5명의 직원과 함께 도마동에서 화학공장을 운영했어요. 창업 당시 남들이 안하는 분야의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삼성, LG, 한화 등 대기업들이 주를 이루는 화학분야를 중소기업이 달려들어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그 화학분야를 선택하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죠.”

- 기업을 하면서 힘든 시절도 많았을 텐데요.

“언제나 노력했어요. 나의 노력에 따라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꿈과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또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자기가 목표한 일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인생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인들의 조언을 듣고, 많은 얘기를 들으면 고민거리가 풀어집니다. 꿈을 크게 가지면 시간은 걸려도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 좋은 사람을 만나면 위기 때 극적인 순간이 온다.

‘I can do it!’ 라이온켐텍은 지난 2001년부터 주력제품인 인조대리석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5년까지 생산제품이 판매되지 않아 3~4년 적자를 보기도 했다. 당시 직원이 80여명에 이르렀으나 급여도 제때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 회사 부채비율은 무려 2700%까지 늘었다. 그동안의 수익도 다 소진됐다. 기업은 자금난에 시달렸고, 박 회장에겐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을 맞이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너무 억울했다”고 했다. 인생을 다 바쳤는데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외부에 겉으로 내색할 수 없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이다.

이후 박 회장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가족과 형제들을 모두 회사로 불러들였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하면 된다’는 신념 하나로 열심히 뛴 결과 희망은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인조대리석 전시회가 기업 재기의 발판이 된 것이다. 해외 바이어들이 라이온켐텍의 작은 전시회 공간에 명함을 놓고 라이온켐텍 제품을 가져간 것이다. 그 바이어들은 몇 년 뒤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라이언켐텍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2005년 이후 우수한 제품이 미국, 유럽 등 해외에 알려지면서 인조대리석의 해외 수출로 이어졌고, 덩달아 매출도 급신장하게 됐다.

박 회장은 “기업은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은 눈을 크게 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해외에 있는 거래처와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나요.

“우선은 해외 바이어들과 공감대 형성을 잘해야 합니다. 외국 바이어의 혜택을 많이 봤어요. 해외 수출 계약을 위해 미국에 갔을 때 해외 바이어가 비싼 숙박료 등을 계산해 주었어요. 한국에 왔을 때 친절하게 접대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지요. 그 후 몇 백만불에 이르는 발주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흥분이 됐고 ‘우리 기업이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가 2005년으로 기억됩니다. 그로 인해 은행 빚을 다 갚고 회사가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어요.”

- 기업이 재기에 성공한 시기는 언제쯤인가요.

“해외 수출 증가로 성장가도를 달리며 2009년부터 흑자경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1~2년이 지나 은행 대출을 다 갚게 됐죠. 정말 검소하게 살았어요. 그러는 동안 전세도 살아보고, 사글세도 살았지요. 집도 최근에서야 장만했습니다.”

- 최근 화재까지 40여년 경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때는 언제였나요.

“기업 설립 초창기인 1975년으로 기억됩니다. 젊은 나이로 화학공장을 운영하면서 모든 분야의 능력이 부족해 좌절감을 느꼈어요. 당시 새벽에 산에 올라가 생각했죠. 책을 읽고 공부하며 답을 찾으려고 연구도 했고…. 빚은 늘고 대전에서 도망갈 생각도 했어요. 눈물이 핑 돌았지요. 너무 신경 써서 잠도 못잤어요.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대전에서 잘 해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대한제지라는 거래처가 생기게 됐는데 그것은 당시로써는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좋아하는 노래는.

“스트레칭을 자주하고 골프와 배드민턴을 주로 해요. 운동을 많이 좋아하는 편입니다. 골프는 싱글정도 하고요.”“고독과 싸워서 이겨내는 내용이 담긴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흘러간 노래로 그리움이 담긴 ‘잊어진 계절’등을 좋아합니다.”

- 회장님의 인생철학 또는 경영철학이 있다면요.

“항상 목표를 정하고 계속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가 웅대해야 합니다. 목표가 바뀌면서 작은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지요. 동반자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더불어 기업은 기술력을 쌓아가야 합니다. 아는 사람,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기업이 가지 않는 길을 내 역량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품질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제품을 소비자가 구입하지 않으면 기업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 회사 직원 복지를 위해 특별히 하시는 일은 있는지요.

“노사화합과 종업원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우리사주조합에 약 30억원을 출연해 종업원에게 애사심과 함께 큰 수익을 안겨 주었어요. 또한 사내복지기금에 3억원을 기부해서 종업원의 복지향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 실천?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는 박희원 회장은 항상 도전정신과 창의적인 기업경영을 토대로 연구개발 및 수출증대 등을 통해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가경제는 물론?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담=백운석 편집국장ㆍ정리=박전규ㆍ사진=이성희 기자

▲박희원 (주)라이온켐텍 회장은.

▶학력 = 충남대 경영대학원 제23기 수료 및 회장 역임, 충남대 산업대학원 제1기 수료 및 동문회장 역임, 충남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제3기 수료, 충남대 행정대학원 최고관리자과정 제11기 수료 및 동문회장, 충남대 최고위 평화안보 정책 제1기 수료 및 동문회장, 충남대 명예공학박사학위 수여.

▶경력 = 국제 라이온스클럽 355-D지구 부총재 역임, 대전승마협회 회장 역임, 대덕이업종교류연합회 회장 역임, 대전상공회의소 상임의원, 건양대 사회교육원 겸임교수 역임, 대전충남중소기업이업종 교류연합회 회장 역임, 현 국세청 세정자문위원, 현 mbc시청자 위원회 위원장, 대전충남경영자총협회 회장 역임, 현 충남대 경상대학 겸임교수, 현 대전상공회의소 부회장.

▶주요 수상 경력 = 2006년 대통령상, 2007년 대전경제과학대상, 2012년 기획재정부 장관상, 2012년 금강환경대상 특별상, 2013년 투명경영대상, 2014년 한국창업대상(첨단기술분야), 대통령 산업포장, 대전시 매출의 탑 수상(천억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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