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그럴듯한 식당, 정식 메뉴가 줄줄이 나오며 P의 음식 품평도 이어진다. 이건 무치는 게 영양소 파괴가 되지 않는데 볶았네, 튀김 이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너무 짜다, 혈압에 나빠…. 틀린 말은 아니지만 O와 J의 추임새까지 보태 그 날의 식탁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던 P는 몸매관리도 잘 해서 날씬함으로 일차 친구들의 기를 죽이더니 행여 밥상머리에 행복이 낄세라 원천 봉쇄를 하는 느낌이었다.
P는 세상을 어떻게 보길래 이 맛난 음식을 먹으며 쉴 새 없이 문제를 찾아낼까?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P. Lakoff)에 따르면 P가 자기의 프레임(frame) 속에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 라고 정의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접할 때 자기가 가진 프레임에 따라 해석을 바꾼다고 하였다.
즉 '마음의 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듣고 말하고 생각할 때 늘 작동한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 날의 식사는 M이 딸을 시집보내고 친구들에게 내는 잔치 음식인데, P는 자기 프레임에 따라 그저 영양과 건강의 관계로만 해석하고 만 것이다. 설령 기름기가 좀 있더라도 축하하는 마음으로 유쾌하게 먹었어야 그 식탁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는 것이었을 게다.
최근 들어 건강이 최고의 화두로 뜨면서 체중 감소와 적절한 식행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많은 식탁에서 이 음식을 먹어야 하느니 마느니, 좋으니 나쁘니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도 나날이 체중이 늘어 걱정할 수위에 이르렀기에 음식의 종류나 조리 형태에 관심이 크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먹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지인들과 어울리는 자리나 귀한 음식 앞에서는 다이어트고 뭐고 무너진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프레임은 그 자리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P의 프레임이나 내 프레임을 두고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판단할 필요는 없다. 프레임은 일반적으로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프레임이 환경에 더 적응적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만을 선택해서 먹더라도 작은 사항에 지나치게 매이고 강박적으로 행동한다면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따지고 긴장하는 것 자체가 이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에는 '절제'도 필요하지만 '균형' 또한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일단 프레임이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부적응적인 면을 가졌다면 관점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흔한 예로 컵에 물이 반 있을 때, “물이 반이나 있네” 할 수도 있고 “반 밖에 없네” 할 수도 있다. 어느 프레임이 살아가는데 더 경쟁력이 있는지 따져보면 변화 동기가 생길 수 도 있다. 스트레스 자극은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개인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그 스트레스 자극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스트레스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프레임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연결되어 존재하므로 작은 언어적 표현에서부터 변화해보도록 하자. 위기(危機)를 위험으로 생각하면 위태롭고, 기회로 생각하면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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