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찬 대전신학대 총장 |
다양한 축제를 바라보면서 문화를 통해서 지역사회를 홍보하고 지역주민을 섬기고자 하는 이때 이웃에 대한 관점을 돌아봤다. 과거에는 누가 우리의 이웃이며, 내가 이웃으로 인정받는가의 나눔과 베품의 관점이었다면 이제는 함께하는 이웃. 함께 소통하며 참여하여 쌍방 간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참여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정치, 기관, 학교, 종교 등이 어떤 일을 할 때 시작하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무엇을 만들어 놓고 일방적으로 초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필요를 찾고 함께 그 필요를 채우는,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관점으로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다. 서로의 합의점을 찾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과가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이제는 함께 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접근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가 비유를 들어 말씀했는데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 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 옷과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인들이 그 근본 의미는 도외시한 채 형식적으로 준수하고 있던 율법을 가리킨다. 낡은 가죽 부대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생활 풍습을 잘 보여 준다.
고대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으로 부대를 만들어 그 속에 여러 가지 액체를 보관했다. 이 가죽 부대는 동물을 죽인 후 머리와 다리 부분을 잘라 내고 그 가죽을 벗겨 낸 다음 털이 나 있는 쪽을 바깥쪽으로 하여 목 부분만을 제외하고 모든 구멍을 꿰맨 후, 가죽에서 기름기를 제거하고 일정 기간 손질하여 사용했다. 이 방법은 팔레스타인은 물론 유럽, 남미에서 최근까지도 사용되던 방법이다. 낡은 가죽 부대는 탄력성이 약하므로 발효력이 강한 새 술을 넣으면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버린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다. 오래된 것은 익숙하다. 반복적인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그 익숙한 것은 편안하다. 편안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익숙한 것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한다. 새로운 변화를 부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과거라는 전통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또 새로운 변화를 담아 내지 못한다. 변화도 성장도 진보도 성숙도 없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숙한 것은 오래된 것이고 새로운 것과 대치된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변화와 도약의 시작이다.
우리에게 낡은 부대와 묵은 포도주는 무엇일까. 이전부터 해왔던 방식들은 편하고, 쉽고, 어렵지 않고, 고통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떠한 변화와 성장도 진보도 없다. 새 술은 새로운 변화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힘들고, 어렵고, 불편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게 한다. 미래의 불확실한 희망을 기대하는 것, 투자나 도전은 불안하게 한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믿음을 필요하다. 미래를 향한 소명만이 이를 극복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들은 과거의 산업혁명 시대의 향수에서 벗어나 그 시절의 영화를 잊어 버려야한다. 과거를 비워야 한다.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새로운 시작은 버림에서 시작된다. 버려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버려야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새 술을 담는 새 부대로 준비해야한다. 새로운 변화, 새로운 패러디임을 담을 새 부대로 준비돼 있어야 한다. 이제는 축제도 특정 집단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담아내는 어떤 도구나 이벤트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주민들이 함께 소통함으로써 100년 이상을 가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로 자릴 잡을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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