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변호사 |
따라서 법의 정당성은 국회에서 부여하고 법원은 단지 법을 적용하는 하부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국회가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에서 만든 법도 최상위법인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가 존재한다. 결국 헌법이 우리나라 모든 법의 근원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물어보자. 그러면 헌법은 또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오래되었지만 박정희 대통령 하의 유신헌법과 독일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 지배 하의 독일헌법을 기억할 수 있다. 이 헌법은 외형상 다수의 국민들에 의한 국민적 합의라는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국민의 지배라는 헌법원칙에도 부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독재자의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허울 좋은 이름뿐인 법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사실 이러한 독재정치 하에서는 법은 법이라는 명칭을 가진 문서를 의미할 뿐 실제 법으로서 정당성을 가진 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법'이라고 하지만 다 '법'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전자, 즉 “'법'이라고 하지만”이라는 문장에서의 '법'은 실정법, 즉 현실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법을 의미하는 것이며 후자, 즉 “다 '법'이 아닌 것이다.”라고 할 때의 '법'은 정당한 법, 법철학적으로 자연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법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단지 현실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법만을 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 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그 상위의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위의 법이란 무엇일까?
딱 잘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세상의 이치'라고 표현하면 가장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달리 표현한다면 정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진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법의 시작은 바로 인간의 도리에서부터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 가야 하지만 또한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분명한 이치가 있는 것이다. 여기 '인간은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기본이치가 바로 법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때에 사회가 만들어지고 사회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게 되는데 그 기준이 바로 법인 것이다. 법은 단지 어떤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의 의미가 아니라 이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적극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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