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명예' 남용의 시대에, 명예를 이유로 민사상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뿐만 아니라 형사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는 시도들이 넘쳐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명예훼손 전담팀까지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히 '홍명예훼손죄인간', 널리 인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는 시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모두 처벌을 받을까? 특히 정책이나 정치권력자의 품행을 비판하는 언론인들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1988년 10월 대법원의 '진실오신 상당성'.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민형사상의 명예훼손 행위일지라도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진실한 경우, 또는 진실 증명이 없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취재하고 보도한 언론인들의 명예훼손 책임이 크게 줄어들었다.
1999년 6월 헌법재판소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 언론의 명예훼손으로 인해 언론소송이 발생할 경우,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지 아니면 사인인지, 언론보도가 공적인 관심 사안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 사안인지를 구분해서 공적인 존재의 공적 사안에 관한 언론보도였다면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크게 줄여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는 선고했다. 더불어 헌법재판소는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이 그러한 언론보도를 자초한 책임이 있는지, 언론보도가 여론 형성과 공개적인 토론에 기여하는 알 권리의 대상인지도 따져서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형사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2002년 1월 대법원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헌법재판소가 1999년 제시한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를 언론의 명예훼손 소송에 처음 도입했다. 기존의 '진실오신의 상당성' 법리와 함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는 지금까지 매우 굳건하게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직자와 공적인 인물들의 명예훼손 소송에 적용되고 있다.
2003년 7월 대법원의 '공적인물, 공적사안' 그리고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의 법리. 대법원은 공적인물이 제기한 언론소송에 기존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 적용을 확고히 하고 나아가 특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대한 의혹의 제기는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라면 쉽게 언론의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이후 공직자 공인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이 법리 역시 확실하게 적용되고 있다.
2011년 9월의 이른바 'PD수첩'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명예훼손죄 판결, 2013년 6월의 이른바 BBK관련 정봉주 의원의 명예훼손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기존의 대법원 명예훼손 법리를 확고히 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기준을 다시 확인하였다. 2013년 12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나 공직자, 공적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적 표현이 공공성을 갖고 있는 한 개인적인 수준의 표현에도 기존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선고했다.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 청렴성은 물론, 공직자의 공무 집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련된 사실이라도 일정한 경우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고 판시했다.
위에서 살펴보듯,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 등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적 표현을 보호하고자 하는 한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매우 강고하고 일관적이다. 최소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언론보도가 아니라면 명예훼손의 법적인 책임 때문에 언론이 정부정책과 정치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감시보도를 피해갈 이유가 없는 나라인 셈이다. 언론이 본연의 제 자리를 찾아서 널리 국민을 이롭게 해 주어야 할 시대적 사명의 막중함을 되뇌어보는, 오늘은, 다시 개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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