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널리 인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라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논단]널리 인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라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4-10-02 14:34
  • 신문게재 2014-10-03 16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명예는 법과 밥이며 삶이자 죽음이다. 일하고 싶어도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을 그만두려고 명예퇴직을 신청한 사람들에겐 돈이 고갈됐다며 되레 사표가 반려된다. 명예박사를 얻기 위해 불명예스러운 돈거래를 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는가하면, 퇴임하기 전에 누렸던 갑 질의 호사를 연장하려는 명예교수들로 인해 강단이 병들기도 한다.

'명예' 남용의 시대에, 명예를 이유로 민사상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뿐만 아니라 형사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는 시도들이 넘쳐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명예훼손 전담팀까지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가히 '홍명예훼손죄인간', 널리 인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는 시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모두 처벌을 받을까? 특히 정책이나 정치권력자의 품행을 비판하는 언론인들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1988년 10월 대법원의 '진실오신 상당성'.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민형사상의 명예훼손 행위일지라도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진실한 경우, 또는 진실 증명이 없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취재하고 보도한 언론인들의 명예훼손 책임이 크게 줄어들었다.

1999년 6월 헌법재판소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 언론의 명예훼손으로 인해 언론소송이 발생할 경우,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지 아니면 사인인지, 언론보도가 공적인 관심 사안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 사안인지를 구분해서 공적인 존재의 공적 사안에 관한 언론보도였다면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크게 줄여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는 선고했다. 더불어 헌법재판소는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이 그러한 언론보도를 자초한 책임이 있는지, 언론보도가 여론 형성과 공개적인 토론에 기여하는 알 권리의 대상인지도 따져서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형사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2002년 1월 대법원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헌법재판소가 1999년 제시한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를 언론의 명예훼손 소송에 처음 도입했다. 기존의 '진실오신의 상당성' 법리와 함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는 지금까지 매우 굳건하게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직자와 공적인 인물들의 명예훼손 소송에 적용되고 있다.

2003년 7월 대법원의 '공적인물, 공적사안' 그리고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의 법리. 대법원은 공적인물이 제기한 언론소송에 기존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 적용을 확고히 하고 나아가 특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대한 의혹의 제기는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라면 쉽게 언론의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이후 공직자 공인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이 법리 역시 확실하게 적용되고 있다.

2011년 9월의 이른바 'PD수첩'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명예훼손죄 판결, 2013년 6월의 이른바 BBK관련 정봉주 의원의 명예훼손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기존의 대법원 명예훼손 법리를 확고히 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기준을 다시 확인하였다. 2013년 12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나 공직자, 공적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적 표현이 공공성을 갖고 있는 한 개인적인 수준의 표현에도 기존의 '공적인물, 공적사안'의 법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선고했다.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 청렴성은 물론, 공직자의 공무 집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련된 사실이라도 일정한 경우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고 판시했다.

위에서 살펴보듯,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 등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적 표현을 보호하고자 하는 한국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매우 강고하고 일관적이다. 최소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언론보도가 아니라면 명예훼손의 법적인 책임 때문에 언론이 정부정책과 정치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감시보도를 피해갈 이유가 없는 나라인 셈이다. 언론이 본연의 제 자리를 찾아서 널리 국민을 이롭게 해 주어야 할 시대적 사명의 막중함을 되뇌어보는, 오늘은, 다시 개천절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5.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1.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