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막말과 품격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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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막말과 품격있는 사회

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제1차관

  • 승인 2014-09-29 14:02
  • 신문게재 2014-09-30 16면
  • 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제1차관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제1차관
▲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제1차관
▲박찬우 전 안전행정부 제1차관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대통령에 대한 막말 동영상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과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원수에게 욕설을 퍼부어 대는 그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위아래 없는 그의 태도와 욕설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襟度)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부의 망언이나 실수 정도로 치부하던 막말이 어느새 사회 전반으로 퍼져 일상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A의원의 그년 발언, B의원의 귀태(鬼胎) 발언, C의원의 국가의 원수 발언 등 정치인의 막말과 노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한 젊은 판사의 막말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막말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이나 그 해악도 크다. 특히, 정치인들의 막말은 파급력이 크고 국정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면에서 해악의 정도가 더 심하다.

대통령에게 함부로 욕하는 어른들을 보며 자란 아이가 부모와 선생님께 말을 함부로 하면 어떻게 훈계를 할 것인지 막막하다. 국회에 정치인의 막말을 금지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막말금지법)이 제출되고 대법원이 판사들의 언어순화를 위해 바른 언행 매뉴얼까지 만들어 전국 법원에 배포하였다니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옛말에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자기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유태인의 경전인 탈무드도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험담은 말한 사람, 듣는 사람, 대상이 된 사람 모두를 죽인다'고 하였다. 막말 잘하기로 유명한 방송인 D씨는 종군위안부를 창녀에 비유했다가 퇴출되는 소동을 겪었고 나꼼수의 E씨는 여성비하 발언으로 본인은 물론 소속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막말로 패가망신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옛말이 그른 것이 없다. 그런데도 막말이 횡행하는 이유는 막말로 한몫 보려는 사람들과 그런 막말에 박수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짓말이라고 고함을 쳤다가 국민적 비난에 직면한 미국의 하원의원 윌슨의 사례에서 보듯이 선진국에서는 의원이 욕설을 하거나 막말을 하는 경우 큰 지탄을 받는다. 영국의회는 거짓말쟁이와 위선자, 비겁자, 반역자 등과 같은 인격모독성 표현과 돼지, 개, 당나귀 등 짐승의 명칭을 절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의회의 품격을 떨어뜨린 죄로 엄하게 징계한다고 한다. 의원 상호간은 물론 대통령에게 까지 비속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우리의 상황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대화와 타협 대신 증오와 갈등의 정치를 끝없이 되풀이 해 왔다. 국민은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품격 있는 정치를 원하는데 정치현장은 증오와 막말이 판을 친다. 증오와 막말의 정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억압에 저항하던 역사의 유산이다. 독재시절 피아(彼我)로 나뉘어 싸우던 기억이 대물림되면서 민주화 이후에도 증오와 갈등의 정치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정치혁신이 성공하려면 상호존중의 정치문화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와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바꿔도 의식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상호존중의 정치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는 정치언어를 순화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막말 정치인에게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게하고, 막말 전력자들이 방송에 출연하거나 의원이 될 수 없도록 차단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지만 막말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역시 교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상대방을 존중해야 나도 존중 받을 수 있음'을 배우고, '토론하는 법과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법'을 훈련하여 시민의식과 공동체정신을 회복하여야 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는 것처럼 나라에도 국격이 있는 법이다.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국격을 높여나가는 일에 국민 모두가 매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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