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전 한남대 총장 |
우리 사회를 눈에 보이는 대로 보면 그럴듯하게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가슴으로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참 힘들게 사는 이웃들이 많다. 특히 한 끼의 끼니를 때워 허기를 채우는 것이 어찌 그리도 힘겨운지. 그렇지만, 이런 밑바닥 삶을 들어 올리는 작은 손길들이 있어, 사회가 구겨지지 않고 균형을 잃어 일그러지지도 않고 비슷하게 균형을 잡아 행복한 듯 훈훈하게 굴러간다. 살아가는 삶의 이치가 참 신기한 감이 든다. 그리고 이 작은 손들의 협동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딱딱한 땅을 뚫고 솟아 나온 작은 떡잎에서 풍기는 뜨거운 생명의 힘을 느끼는 듯하다.
필자에게 갓 스무 살이 된 김태훈(가명)군의 기부 스토리는 비록 작은 손이지만 감동 있는 메시지를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가 시작한 일은 월 35만원을 받는 아르바이트였다. 그는 받은 돈을 아껴 저축하고 교통비, 식비에 쓰고 다섯 개 단체에 후원금을 보내었다. 어떤 단체에는 월3만원씩 후원을 하기도 했다. 이 돈이 어떤 이에게는 적은 돈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큰돈이었다. 한 달 수입의 10%에 해당한 돈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부금을 못 낼 것 같아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래도 절약할 것이란 교통비와 식비라서 차를 타는 대신 걷고, 가끔 저녁을 굶어 절약하기도 했다. 비록 돈은 적게 벌지만 아껴가며 실천하는 나눔이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돈은 버는 만큼 가치 있게 써야 하며, 저 한 사람이 욕심을 버리기 시작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더라고 말한다. 아직 사회적 경험이 어리지만 어른 같이 말한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작은 손으로 데우고 있다. 스무 살 나이에 어쩌면 그리도 어른스럽고 그런 기특한 맘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든다. 이 젊은이를 통해서 진정한 어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는 것 같다. 기부금을 보내려고 밥을 굶기도 했다는 대목에서는 필자가 살았던 시대의 어머니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모두가 먹고살기가 몹시 힘들었던 때였다. 그런 중에도 자식 공부만은 시키겠다고 절약할 것은 먹는 것밖에 없다 하여 어머니들은 끼니를 걸러가면서 자식학비를 마련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뜨거운 사랑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처럼 그가 나눔과 베풂을 아끼지 않는 청년으로 자라기까지는 가정에서 어머니의 양육과 교육이 뒷받침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사소한 것이라도 당연해 하지 않고 감사해 하는 마음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는 매일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가족이 있는 것도, 온 가족이 모여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이 한 몸이 편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니, 감사하고 진짜 행복이구나라고 가르쳤다.
이런 어머니를 늘 보고 느끼면서 그는 자랐다. 그에게는 사소한 일,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갈 때는 되돌아갈 공간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참 좋은 인성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부모 된 우리가 확실하게 알 것은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 심지어 표정이나 걸음걸이까지도 내 자녀가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자양분 삼아 늘 다짐을 하곤 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작지만, 기부를 통해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군은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동안 받아 온 사랑과 보호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성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말한다. 또한, 나눔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필수 항목이며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늘 그렇게 살려고 훈련한다고 했다.
스무 살, 김군의 모습은 나 스스로 어떤 어른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어른인가를 자문하게도 한다. 이러한 물음을 통해 우리 사회에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드는 작은 손들이 수적으로 더욱더 확산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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