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 한밭대 총장 |
이것은 고대 중동의 어느 왕이 현명한 신하들에게 부탁하여 받은 글귀라고 한다. 이 글귀와 관련된 어느 시에서는,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고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이 글귀가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주는 이유는 감정의 희로애락은 시간의 흐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나아가 앞날의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서 그럴 것이다. 어려운 시절 이발소 벽에 걸린 액자에서 자주 보았던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이유로 이 글귀는 우리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준다. 특히,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 문제와 마주쳤을 때 더 큰 위로가 됨에는 틀림이 없다.
앞의 어느 시는 계속 말한다.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도 마찬가지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고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에 나오는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福之爲禍, 禍之爲福)' 것과도 같은 것이다. 즉, 세속의 일은 그 미래가 어떨지 모르니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담담하게 맞이하라는 것이다. 동양은 복(福)과 화(禍)의 순환성을 얘기하지만, 서양의 시인은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인생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찰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행복을 바라며 줄기차게 달려온 삶이 지나고 나면, 다음에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하며 숨을 고르기 보단 '이것 또한 새겨지리라'를 더 깊이 느끼며 숙고하게 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나에게 주어진 소임 때문이다. 이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매사에 미래를 바라보며 생각을 하게 되다 보니 더욱 그렇다. 현재의 생각들이 미래에 어떤 기록으로 새겨질 지를 생각하면, 대학을 경영한다는 것이 마냥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만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다. 대학의 경영은 위로(慰勞)의 문제가 아니며, 순환성(循環性)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얼마 전 대학비전 선포식을 하면서 우리가 찾은 해법이 '정직, 책임, 배려 - 기본이 강한 대학'이라는 핵심가치와 슬로건이다. 개인이나 대학이나 어려운 문제는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것은 무슨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현재의 이 문제를 풀어 나갈 때는 반드시 대학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다가온 문제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회피할 수 없는 일이다. 회피해서 될 일도 아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그 문제의 원인을 찾고, 왜 지금 이 일이 일어나는지? 이 일은 어디로 향해 나갈 것인지? 이 일이 학생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을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럴 때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 '정직, 책임, 배려'와 같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를 염두에 두고 판단한다면, 선택의 오류를 최소화하며 어려운 일들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이 쌓이면 '기본이 강한 대학'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는 자기 눈을 가리고, 하늘이 없는 것으로 알고 행동하거나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행위와 경영이란 궁극적으로 그 사람 혹은 그가 속한 조직의 미래 가치를 상실시키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된다. 미래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현재'를 판단하는 가치 기준은 '정직, 책임, 배려'라고 믿는다. 미래란 현재에 사는 우리의 판단 결과이기에 그렇다. 오늘도 우리 대학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보다 '이것 또한 새겨지리라'를 더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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