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가수원초 교장(동화작가) |
출근하는 선생님 앞에 까맣게 여문 분꽃씨를 내밀었다. 그리고 콩알만한 씨의 껍질을 까고 그 안에서 드러난 배젖 알맹이를 손바닥에 으깨어 젊은 선생님 볼에 발랐다. 피부색보다 더 하얀 분이 묻어났다.
“어머머, 정말… 정말 전 이 분꽃 의미도 모르고 그냥 외웠어요. 제법 양도 많네요.”
크게 놀라는 선생님과 옛날 여인네들이 이 분꽃씨를 모아서 천연 파우더처럼 발랐을 상상으로 즐거웠다. 담임한 아이들에게도 나처럼 꽃씨의 껍질을 벗기면서 꽃명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공부시켰다니, 앞으로 다른 꽃에도 관심을 갖는 적용 능력이 생겨날 것이다. 일상에서 무심코 암기된 학습이 아닌 생생한 생활 자료를 활용하면 탐구과정도 재미있고 다양한 연상기법으로 확산적 사고 속에서 창의력도 증대시킬 수 있는데 우리는 일상에서 이 부분을 놓치고 살고 있지 않나 싶어서 안타깝다. 우리 학교는 도심의 변두리에 위치한 7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로 넓은 운동장이 화단으로 둘러싸였다. 물론 회양목 안에 소나무, 향나무, 배롱나무가 중심을 이루지만 작년부터 '추억의 꽃길 가꾸기'로 한해살이 꽃모를 내서 나무 사이마다 옮겨 심었더니, 올해는 30여 종이 예쁜 꽃무더기를 이루며 오가는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교장선생님, 학교가 정말 아름다워요.”
진분홍색 왕나팔꽃길에서 만난 학부모가 감동을 먹었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나팔꽃 닮은 웃음을 건넸다. 파마머리같이 부풀어 오른 서광은 황금색을 띄며 여름내 제 몸 불리기를 하더니 그 아래 줄지어 자란 꽃잔디를 덮어서 엊그제 몸통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치렀다.
'남의 영역을 침범했으니 어쩔 수 없어!'
자연에서도 생존 질서를 유지해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지킴이가 심은 관상용 꽃가지는 마치 삶아서 막 까놓은 하얀 달걀 모양을 매달아서 관심을 끈다.
“우와, 달걀 먹고 싶어요.”
개구쟁이 아이가 입술에 침을 바른다. 어느 학부모는 달걀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고 우겨서 구경을 왔단다. 백일홍은 이름 그대로 100일 이상 피고지고를 반복하고, 족두리꽃은 머리에 꽂는 장신구처럼 하늘대서 여간 멋스럽지 않다.
꽃들은 혼자 피었을 때보다 무리를 이룰 때 더 아름답다. 흔히 잡초라 불리는 개망초도 꽃무더기로 만나면 안개꽃처럼 예쁘지 않은가? 가을 운동회 날, 무용하는 아이들 손이 푸른 하늘을 향할 때면 그 나불대는 손들이 흡사 생생한 꽃들의 행진이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 역시 그 성장 과정이 꽃을 가꾸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종류의 씨를 뿌리고 본잎이 나오는 순간, 금세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 그리고 제 각각 꿈을 키우듯 가지를 뻗어서 꽃망울을 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끼를 표현하듯이 색색의 꽃으로 만개하니 말이다.
봄에 꽃씨를 뿌리고 그 모종을 옮겨심기 하면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서 새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고통을 견디며 더 강하게 땅을 움켜쥐나 보다.
“전학을 와서 우리 아이가 상처가 클 것 같아요.”
“우리 아이 짝꿍 바꿔 주세요.”
이렇게 아이의 걱정을 대신하는 어른을 본다. 우리 아이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혹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애쓰며 성장하고 있는데도 어른들은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화단에서 자란 한해살이 꽃들도 폭풍을 이겨내고 그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말이다. 고통 없는 성장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모처럼 분꽃씨의 단단함을 통해 날마다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까만 눈망울을 연상해 본다. 내일을 꿈꾸며 선생님을 쳐다보는 아이의 앙다문 입술까지 눈그림으로 그리니, 내년 봄 한 세기를 창조할 이 작은 꽃씨의 능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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