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23일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10년 동안 대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은 보편적인 생각이 됐으며, 공개된 장소에서 성매매를 유혹하는 집결지도 사라졌다. 이를 '유천동 집결지 해체 파급 효과'라고 본다. 인권을 짓밟은 성매매에 대해 단호하게 처벌한 '황운하 효과'로도 불린다. 지난 18일 대전경찰청 황운하 2부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편집자 주>
지난 18일 사전에 약속하고 찾아간 대전경찰청 5층 2부장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수행비서의 양해를 듣고 나서도 10분쯤 지나서야 황운하 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6월 김해경 경무관이 서울 송파경찰서장으로 전출되면서 1부장은 현재까지 공석이고 황 부장이 최현락 청장을 도와 대전경찰 안살림과 바깥 치안업무를 모두 하는 셈이다.
성매매방지법 10주년 관련 인터뷰 요청에 황 부장은 곧바로 수락했지만,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성매매 척결의 선봉으로 비칠까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인터뷰 초반부터, “집결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중부서장으로 부임하면 유천동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준비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그가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유천동 성매매집결지를 해체하겠다고 나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인권과 신뢰 문제로 접근하다
2008년 3월 중부경찰서장에 부임해 업무파악을 할 때 접한 지역신문의 기사였다. 내용은 유천동에서 탈출한 여성의 감금생활을 폭로한 기사였다. 인간이 아니라 성매매 기계와 같은 상황, 감금, 밥 안 먹이고 병원에도 못 가고 생리 때도 어떻게 해야 하고, 탈출하다 붙잡히면 더 큰 폭력을 당하고.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이 무시된 현장이 내 관할에 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황 부장은 “불법 성매매로서의 문제를 넘어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짓밟힌 지역이 있다는 걸 안 이상 분노하지 않으면 경찰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성매매집결지는 경찰에 대한 신뢰문제와 직결된다고 본 것도 이유다. “불법 성매매 집결지가 도심에 있고 대로변에 노출된 현실에서 법을 집행하는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확보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경찰 전체가 유천동 집결지와 유착된 것으로 매도되는 상황이었고 경찰의 부패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고민했던 것은 경찰력을 대거 투입하고도 집결지 해체라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오히려 경찰 조직이 다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의적 시각 극복이 중요했다
중부서 직원들에게 무기명 설문도 돌리고 계장급 이상 토론도 벌여 의견을 들었더니 무모하다거나 폐쇄도 안 되고 경찰만 수렁에 빠지고 업주들이 경찰에 대한 보복으로 어느 경찰에 돈을 줬다는 진정투서가 나올 수 있어 경찰이 다칠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던 것이다.
유천동 집결지는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1979년 현 부지에 만들어지면서 은행동에 있던 성매매 방석집들이 모여들어 조성된 것으로 30년이라는 뿌리가 깊은 곳이다 보니 부딪치는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황 부장은 “확실히 옳은 일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부딪치는 일을 경험해봤다”며 “이 일은 반드시 해야겠으니 자신 없는 사람은 떠나라고 직원들에게 의지를 밝혔고, 1년 내 해체는 어렵더라도 후임 서장이 내가 하는 유천동 해체 정책을 이어받을 수준으로 분위기 조성을 잘해보자고 시작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성매매집결지 집중 단속은 당시 중구청장을 비롯해 세무서장, 소방서장이 모두 유천동에 모여 대책회의를 할 정도로 포위작전을 방불케 했다.
집결지 입구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방범순찰대를 밤에도 배치하고. 일주일에 2번씩 관계기관 직원들이 밤 10시쯤 순찰하고, 손님을 만나면 불심검문해 수배자 파악했다. 택시가 집결지로 들어오면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성구매자들이 더 이상 유천동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인ㆍ허가권을 쥔 중구청은 행정위반 사항들을, 세무서는 철저한 세무조사, 소방서는 꼼꼼한 소방시설 점검 등으로 힘을 경찰을 엄호했다. 성매매업소 업주들의 반발도 거세 경찰서 앞에서 집회도 하고, 뒤를 봐준 경찰 리스트를 공개하겠다는 으름장을 놨으며, 서장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을 알고 있다는 협박도 있었다.
#확고한 의지, 숱한 난관을 극복하다
하지만, 확고한 의지는 결국 변화를 일으켰다. 67곳에 달하던 성매매집결지의 업소가 하나둘씩 유천동을 떠났고, 집중단속 100일쯤 맞는 9월 중순, 성매매 업소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영업 중단을 선언하고 '셔터'를 내렸다. 구청과 세무서에 폐업이나 휴업을 각각 접수하는 방식으로 집결지 해체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황 부장은 “모든 지역에 성매매업소를 근절하지 못했지만, 집결지 해체를 계기로 창궐하던 영업분위기를 꺾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아쉬운 것은 무려 만 6년이 지났어도 유천동 공간이 예전 상태로 방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시와 중구 등 자치단체가 대덕구의 중리동처럼 유천동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낮은 상태의 균형을 말하다
시계 침을 다시 오늘에 맞춰 대화를 이어가자 황 부장은 말을 더욱 천천히 내뱉었다. 질문이 끝나고도 10~20초씩 공백을 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황 부장은 “집결지 해체는 곧바로 신ㆍ변종 업소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오피스텔의 신변종 업소는 새로운 성매매 수요가 발생해 그 수요에 쫓아가는 변화라고 봐야 한다”며 “신변종 업소가 만들어진다고 성매매 업소 단속이 필요 없다는 무용론에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범죄는 '낮은 상태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성매매 역시 체게바라처럼 이상은 성범죄 근절이라는 목표를 두되 현실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꾸준히 관리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음지로 숨어든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최근 논의되는 게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다.
성매매방지법에서도 자발적인 성매매 여성의 성매매행위는 성매수남과 함께 처벌되고 있다. 강요에 의한 성매매에 처했을 때 비자발적 성매매로 보고 피해여성으로 구제할 수 있으나 피해여성이 강요받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벽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안으로 논의된다.
이에 대해 황 부장은 “현행 특별법에서는 비자발적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로 규정해 보호조치를 하나 자발적 성매매 여성은 함께 처벌해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가 논의되는 것은 안다”며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 시 성매매 불법국가의 여성들이 국내에 유입될 수 있고, 경찰 단속과정에서 성매매 피해자라 하며 단속과 수사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어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성매매=반인권', 인식 중요하다
그러면서 현행 성매매방지법에 성매매 피해자의 개념을 확대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황 부장은 “당장에 성매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지만, 성매매 피해자의 개념을 확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며 “강요와 감금이 아니더라도 환경적 요인으로 성매매에 뛰어든 여성에 대해서는 피해자로 볼 수 있는 법류 개정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가 반인권적 행위라는 인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부장은 “성매매는 지불된 성폭력이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침해 행위로 인간의 인권과 여성의 자존감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이성의 성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 반인권적이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운하 2부장은
황운하(52) 대전경찰청 2부장은 대전 중구 출신으로 서대전고를 나와 경찰대 1기 법학과를 졸업해 1985년 경위로 경찰에 발을 디뎠다.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장과 본청 수사국 수사구조개혁팀장 등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황운하는 2006년 서부경찰서장으로 대전에 얼굴을 비췄다.
검찰의 '구속전 피의자 인치면담 명령'을 검찰의 위법적인 명령이라며 거부하고, 수사구조개혁 등을 촉구하는 글을 경찰 내부 통신망에 올려 그해 9월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전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2008년 대전중부경찰서장 취임한 그는 성매매집결지 집중단속을 벌였고, 2009년 대전청 생활안전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과 서울 송파경찰서장, 경찰청 수사기획관을 거쳐 2012년 경찰수사연구원장을 맡았다. 올 1월 대전경찰청 2부장으로 돌아온 황 부장은 9개 과 업무를 총괄한다.
대담=윤희진 법조사건팀장·정리=임병안·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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