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표 대덕대 총장 |
11시간을 날아 우리 앞에 선 교황의 강인한 체력에 놀랐고, 인자함과 순수함 그 자체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50달러짜리 플라스틱 손목시계, 목에 걸린 빛바랜 십자가, 고향 시골 구둣방에서 맞춘 허름한 구두 차림에다 손수 때 묻은 손가방을 들고, 풀어진 신발끈을 허리 굽혀 묶어 매는가 하면, 무릎 꿇은 신자를 일어나서 축복 받도록 하고, 빨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하얀 옷에 얼룩이지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일련의 행동들이 아주 자연스러웠고 당당했다.
꾸밈없는 진정한 평범함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일 터.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아주 정상적인 일인데도 과연 이라는 감탄사에 경외감을 아낌없이 보냈다. 우리네 지도자들에게선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보기 드문 일이어서 그 진한 감동과 아쉬움은 더 깊이 남아있다.
공항에 도착 후부터 대중 속을 이동할 때는 하나같이 교황의 소형 국산 차 뒤에는 고급 승용차의 진기한 행렬이 이어졌고, 테러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거늘 방탄차를 마다했다. 군중 속에서 보다 많은 사람과 무언의 대화를 갖는 구김새 없는 몸짓 하나하나는 모두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설교이고 강론 그 자체로 가르침의 긴 여운을 남겼다. 어디에서나 국빈 예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비행기 좌석에서부터 숙소, 식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보통 시민과 다름이 없었다.
78세 고령의 노구(軀)가 무색했다. 꼭 필요한 최소한 의 것 외엔 어느 것도 그 이상을 소유하지 않으며 가난을 실천하는 청빈(淸貧)과 절약이 몸에 베인 맑은 수도자를 새겼다. 민초들에게 표 얻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지도자로 선택된 사람들일수록 자리에 걸 맞는 체면과 품위유지라는 명목아래 상상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행위가 일상화되어 있는 것을 언제까지 듣고 보아야 하는지 답답한 현실이 대비되기도 했다.
“우리는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가 되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면서 한없이 낮은 곳을 향하여 위무(慰撫)하고 소통하며 진정어린 관심과 애정으로 일관했다. 철저했다. 낮은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가난한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이어가는 것이.
하긴 '교황'이란 말도 어원을 보면 'Servus Servorum Dei'로 '종들의 종'이라고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자기 자신은 완전하게 비우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지혜와 충만한 사랑을 볼 수 있었다. 내내 세월호 유가족 만나는 것을 필두로 중증장애인들과의 장시간 격의 없는 순백의 사랑을 나누고,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유가족, 제주도강정마을 주민 등과 함께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치유의 길로 나아갈 것을 무언으로 전하고 화해, 일치, 평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즉각 실천할 것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기자의 질문에 “위안부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 품위를 지켰다”고 답했다고 한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로 인식했을 법 한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사실 그대로를 밝힌 명답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순교자의 나라, 한국의 땅에서 진정한 종교지도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내 편을 들어주길 바라기보다 스스로 용기 내어 진실한 화해와 배려, 관용, 용서, 일치, 평화 등을 조건 없이 실천할 것을 주문하면서 젊은이들을 향해 “깨어 있으라”고도 했다.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한국의 지도자들이 부패와 타락의 늪에 빠져 있음을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으니 처절한 자기성찰 속에서 자신부터 정화하라'는 메시지다.
특히 세상을 가르치려는 못된 버릇을 하루빨리 버려야 할 것이다. 또 호의호식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하며 먼저 정치적 갈등ㆍ대립ㆍ분열을 극복하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 더불어 나가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라는 것이니 '오늘도 약자를 섬기며 돕고 배려하는 일을 실천하라'고 기도를 할 그를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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