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수 변호사 |
지난 200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TV를 사기 위해 보스턴에 있는 전자제품 전문판매점인 '베스트 바이'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왕이면 하는 마음에 한국산 TV를 사려고 했으나 한국산 제품 자체가 전시되어 있지 않아 씁쓸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소니 TV를 살 수밖에 없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할 무렵인 2003년 여름에 워싱턴 근교의 베스트 바이 매장을 방문했는데 놀랍게도 한국산 TV들이 일제 TV들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브라운관 TV가 사라지고 평판 TV가 생산되면서 TV 판매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인인지도 모르는 종업원이 한국산 TV를 가리키면서 품질이 좋으니 사라고 권유하는 말을 들으면서 느꼈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불과 2년 사이에 한국의 위상이 너무나도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 무렵부터 시작된 한국산 TV의 눈부신 약진으로 소니는 2004년부터 TV 부문에서 계속 적자만 보다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TV 부문을 분사시키겠다는 방침까지 밝힌 상태다.
여름휴가의 마지막 여행지인 미네아폴리스를 간 김에 미국에서 가장 크다는 쇼핑몰인 '몰 오브 어메리카'를 들러 베스트 바이 매장을 둘러보았다. 미국에서는 한국산 노트북이 얼마에 판매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한국산 제품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장에는 삼성을 비롯한 한국 제품은 하나도 전시 되어 있지 않고, 미국이나 일본의 제품, 레노보 및 에이수스 등과 같은 중국 제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가게 종업원에게 삼성 노트북을 좀 보고싶다고 하자 가게 종업원은 자신이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자기들 가게에서는 삼성 제품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한국산 노트북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인터넷으로베스트 바이 온라인 사이트를 접속하여 노트북 판매현황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산 제품이 판매는 되고 있었는데 판매수량을 기준으로 한 순위 30위까지의 모델 중에서 한국산 제품은 삼성제품 단 1개의 모델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하여 중국산 제품은 비록 저가품 위주의 제품이기는 했으나 판매수량 기준 30위까지의 모델에 7개 모델이 들어있었다. 중국산 제품은 품질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고객만족도 기준 30위까지의 제품을 검색해 보았는데 거기에서도 한국산 제품은 삼성제품 1개 밖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중국산 제품은 6개나 들어있었다.
세계의 모든 제품들이 모여서 무한경쟁을 하는 미국시장에서 비록 노트북 한 분야 이기는 하지만 한국산 제품이 중국산 제품에 밀리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10여년전 일제 TV들이 한국산 TV들에게 밀리기 시작하던 모습들이 오버랩됐다. 설마 삼성이 소니처럼 되겠느냐는 생각을 하다가도 최근에 베를린에서 열렸던 글로벌 전자제품 전시회인 IFC 2014에서 중국이 세계최대의 UHD TV와 세계최초의 양자점 TV를 출시하여 높은 기술력을 과시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이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하면 과장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도처에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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