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대전시의회 부의장 |
관혼상제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가 아니더라도 보편적인 인간이 동물과 달리 갖는 특장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것은 생물학적인 일이지만, 돌이나 생일을 기념하고, 성년됨을 중시하고, 혼인을 축하하며, 사별을 애도하고, 사후에도 꾸준히 명복을 비는 것은 인류학적인 일이다. 인간을 '털없는 원숭이'로 칭한 데스몬드 모리스가 인간을 동물과 비유하면서도 크게 다른 점을 꼽는다면, 그것은 수많은 동물들중에서 인간만큼 부모의 양육기간이 긴 동물은 없다는 점이다. 몇 개월 이내에 부모의 양육을 떠나 독립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양육기간이 20년을 전후로 할 만큼 길다. 그렇고 보면, 부모의 품안에 있으면 애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안간다.
관혼상제중에서 으뜸인 성년은 거저 오는게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심신무장과 국가에 대한 책무를 걸머지고 멋진 사회구성원으로 편입된다는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런만큼 전통적인 성년식 중에는 체력과 담력 테스트 같은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치는 경우도 많다. 아프리카 하마르족이 소 등을 뛰어넘는 것은 약과고, 오늘날 번지점프의 원조격인 남태평양 펜타코스트섬 원주민들은 칡뿌리를 감고 30m 아래로 뛰어내리는, 이른바 생사를 건 통과의례를 치를 정도란다.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이스라엘은 '통곡의 벽'이라는 성지에 모여 3500년간의 유대민족사를 들려주며 역사의식과 함께 신앙심을 곧추세우기도 한다.
현대를 사는 많은 나라들이 성년식을 행하고 있다. 성년의 날을 법으로 정하든, 일본처럼 국가공휴일로 까지 정하든 상관없이, 선진국들은 나름대로 성년식을 통해 청소년들의 어른됨을 축하한다. 그러나 한국은 그들보다 오래 지켜온 미풍양속임에도, 마지못해 하는 형식에 치우쳐 지자체에 따라서는 전통재현에 의미를 두거나, 당사자의 성년식보다는 성년식 '체험'에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결혼식에 재현이나 체험이 없듯이, 성년식을 대행하는 듯한 행사는 잘못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밸런타인데이처럼 상혼에 물들어, 장미꽃과 향수를 선물하는 수준으로 격하하는 풍조까지 생겼다.
인성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청과 학교에서도 그동안 졸업식은 중시하되 성년식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입시지옥이다보니 졸업식밖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졸업식이나 성년식이나 모두 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대나무의 매듭임에 틀림없다. 매듭이 있기에 대나무는 단단하여 세파를 이겨낸다. 그러나 성년식은 성인으로의 입문을 알리는 입학식이기도 하고, 졸업식과 달리 일생에 단 한번 거치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대나무의 다른 매듭과는 분명 차이가 있고 비중을 달리한다.
얼마전 고려대에서 벌인 '수재민 지원 아름다운 성년의 날' 행사나, '써니 대학생 자원봉사단 성년의 날' 행사는 기존의 성년식을 성찰적으로 고양시켰다. 이에 힘입어 대전시의회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전시교육청 성년식 시행 조례'를 입법하기에 이르렀다. 부디 성년식을 통해 재무장된 대한의 성년들이 한없이 추락하는 나라에 날개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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