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그리운 깨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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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그리운 깨송편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14-09-10 13:23
  • 신문게재 2014-09-11 17면
  •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삽상한 아침이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컴퓨터를 여니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반가운 이메일이 도착해 있다. 북쪽 해안 길을 따라 밀려오는 들꽃으로부터 봄이 온다는 그 곳은 지금 마당 한구석 플라타너스 나무에도, 어린 포도나무에도 파릇한 녹색이 찾아 들어 봄을 알리고 있단다. 출근 길 나는 가을을 느끼며 마음이 설?는데 지구 반대편에 사는 누구는 봄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참 즐거운 세상이다.

몇 해 전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느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갔다가 며칠 여행하는 길에 만난 그는 공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여행자를 안내하며 이야기와 길을 찾아 나누며 산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특별한 그의 안내와 설명 덕분에 우리는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서부 아프리카에 번지는 에볼라 바이러스 영향으로 여행 일정들이 취소되었고 앞으로의 시간들도 매우 불투명해진 상태라 예상치 못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가함이 편치만은 않지만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보내겠다며, 그는 인터넷에 올라온 택배회사 창고의 선물상자들을 보면서 고향의 명절을 추억하고 있었다. 깨소금과 설탕을 버무린 속을 넣은 송편을 좋아하는데 10년 가까이 먹어본 기억이 없어 아내에게 송편 이야기를 꺼냈다가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저런, 케이프타운이 그렇게 멀지만 않다면 얼린 송편이라도 한 상자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밀리고 밀리던 고향 가는 길도 그립다는 이역의 편지를 읽으며 아침에 들은 뉴스를 다시 생각한다.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만 고향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단다. 여럿이 모이면 먹고 노는 일도 큰 일이 되니까 고생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러니 서로 얼굴 보고 인사 나누면 각자의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려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오고 가는 길에 교통 혼잡을 생각하면 마냥 머무르면서 여유를 부릴 수도 없고, 게다가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쾌했던 경험이라도 있을라치면 다시 고향 찾기를 꺼리는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함께 나눈 그 시간을, 그 고생과 어수선함을 추억으로 그리워할 날이 우리 모두에게도 오지 않겠는가?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것이 가능할 때에는 잘 모르고 사는가 보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에 고향이 있으니까 나설 수 있고, 만나고 싶은 부모나 형제가 있으니까 가려고 하고, 갈만한 형편이 되니까 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어느 유머 책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이발을 하려고 이발소에 갔다. 이발소 앞에는 '내일은 공짜!' 라는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 내일 와야지! 다음 날 이발소를 다시 찾은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내일은 공짜! '광고판이었다. 그리고 또 내일, 내일, 내일… 짧은 글이지만 유머 책에 있기에는 아까울 만큼 깊은 뜻이 담겨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내일을 꿈꾸고 기대하지만 내일은 오늘이 되고, 또 다른 내일은 또 오늘이 되고 실제로 사는 것은 오늘일 뿐이다. 오늘이 의미하는 바는 '여기-지금(here and now)'이다.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의 상황에 충실해야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으라고 하지만 온전히 오늘에 집중하지 않는 한 내일의 기대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단히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이즈음의 우리 세태도 '위기(危機)를 맞은 오늘' 이라 생각하고 지혜롭게 극복해야 하겠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이니까. 둥근 원이 아니라 반달 모양의 송편이 의미하는 것도 앞으로의 희망을 의미한다지 않는가.

서늘해지는 날씨에 더 많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더 크게 만남을 기뻐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누는 따뜻한 추석 명절이면 좋겠다. 먼 나라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누구는 준비할 수 있는 한국 음식 몇 가지 차려놓고, '봄날의 추석'을 맞을 터이니. 아, 이국의 땅에서 깨송편을 그리워하는 친구에게는 곱게 빚은 마음의 송편이라도 보내주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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