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하지만 디자인은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예술이며, 디지털혁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디자인혁명이라 할 만큼 가히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맞이했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디자인혁명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9세기는 미술공예운동을 계기로 실용미학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20세기 전기에는 산업혁명에 따른 기계미학의 시대라 하였다. 또 20세기 후기는 소비의 풍요와 더불어 팝 아트를 기반으로 한 반미학의 시대, 21세기인 지금은 디지털미학의 시대라 정의했다. 과학과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예술 역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창작되며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결합으로 현대사회는 디자인과 인간이 영위하는 생활환경과의 관계가 더욱 촘촘하고 복잡해졌다. 동시에 현대인들이 가지는 욕구도 훨씬 더 복잡다단해졌기 때문에 디자인 역시 다른 학문과의 연관성이 커진다. 미학을 기본으로 공학, 경영학, 심리학, 인류학까지 관계하며, 디자인은 이제 인간의 시각적, 실용적, 심리적, 과학적, 감성적인 면 등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한다. 이렇게 볼 때 디자인은 하나의 소우주 같기도 하다. 우주는 끊임없는 순환과 생태계의 균형, 그리고 우리가 미처 다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작용들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디자인을 봤을 때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그 만족으로까지의 과정은 의외로 마치 마인드맵처럼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 20세기 미국의 그래픽 디자인의 중심에 있었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폴 랜드는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은 예술일 수 있다. 디자인은 미학일 수도 있다. 디자인은 매우 단순하고, 바로 그 때문에 디자인은 매우 복잡하다.”
단순하기 때문에 복잡하다고 하는 그의 말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역설적인 표현이 그러하듯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게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복잡하고 세밀한 것을 보기에 깔끔하고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디자이너들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할지 모른다. 또한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볼 줄 아는 창조적인 사고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본디자인센터 대표, 무사시노미술대학 교수인 하라 켄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 보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비록 결과물이 단조로운 형태일지 모르지만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쉽고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말이다. 디자인은 나만의 일상과 환경을 위해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속해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의 디자인은 생활을 만족시키고, 생활을 정신적ㆍ감성적으로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울수록 그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더욱 감동적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적어도 나도 모르게 바쁘게 흘러가버리는 그런 하루는 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디자인과 함께, 우리의 감정과 정서는 한층 더 풍부해지며, 나아가 보이지 않는 삶 또한 더 아름답게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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