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하 공주교대부설초 교사 |
라면 한 봉지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사람마다 '라면 한 봉지'가 주는 의미는 다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라면 한 봉지는 목욕 후 아이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땀 뻘뻘 흘리며 함께 먹는 음식의 일종이다. 우리 아이와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라고나 할까. 그런 음식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한비야씨는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라면 한 봉지'라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라면 한 봉지'는 무엇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한 그녀만의 철학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 떡집 할머니의 작은 칭찬, 베트남 복권 파는 아이의 씩씩한 희망, 그리고 쓰나미와 전쟁으로 폐허 같은 삶을 살아가는 짐바브웨의 꼬마들에게서 발견하는 웃음. 그녀의 '라면 한 봉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어이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 기대, 사랑이 아닐까?
우리 반 학생들은 그들의 웃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주워먹으면서도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을 우리 반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연달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들 대부분이 폭력과 분노로 인한 '타인 공격'이다. 예전보다 먹거리도 풍성해졌고, 부모들이나 교사들은 더 부드러워졌으며 학교에서의 체벌은 사라졌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졌고 공격성은 늘었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우리 반 학부모들 대부분도 나와 같은 나이일 텐데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돌볼까. 공부만 재촉한 것은 아닐까. 집안 대소사나 가족끼리의 체험보다는 성적만 괜찮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감정 상태를 살피고 타인의 감정에 관심을 두는 공부도 가르칠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나를 가만 돌아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엄마로서 교사로서 소소한 것에 기뻐하고 보이지 않은 것에 감동받고 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도록 가르치기는 했을까. 우리 반 아이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긴 했는지, 깊은 수준의 공감과 관심은 가졌는지 돌이켜 본다. 지지하고 격려하고 함께 하는 생활. 너도 행복하고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교사로서 정말 성심을 다했니? 김 선생.
아! 울컥,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 많이 부족했구나 싶었나보다. 한비야씨의 라면 한 봉지에서 느끼는 행복을 외면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도 함께 든다. '그래도, 김선생. 이제 절반 왔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뭐, 인생시계로 본다는 지금 나는 이제 막 점심 식사를 끝내고 차 한 잔 마시며 오후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시점이다. 축구경기에 비유하더라도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 중에서 이제 막 전반전을 끝냈을 뿐이다. 전반전에 실책 몇 번해서 골을 먹었다고 해도 아직 후반전은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은가? 한비야씨 말대로 연장전도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만회할 시간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이제 또 다른 문 앞에 서 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을 해 본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24가지 보석들이 '오늘도 행복했다 혹은 학교가 좋다'는 마음이 들도록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며 마음과 마음이 함께 하는 따뜻한 소통으로 한비야씨처럼 나도 새로 단 날개를 활짝 펴고 지도 밖으로 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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