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숙인들의 명절 보내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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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노숙인들의 명절 보내버리기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소장

  • 승인 2014-08-27 12:58
  • 신문게재 2014-08-28 17면
  •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소장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소장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소장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 소장
곧 추석명절이다. 특히 올해 추석은 대체휴무일까지 합쳐 5일이나 쉴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렇게 긴 명절은 그리 반갑지 않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남들에게는 여름휴가 이후 또다시 갖게 되는 긴 휴가가 되겠지만 노숙인 현장에서는 명절이라고 하던 일을 멈추고 고향으로 향할 수가 없다. 노숙인 현장에서의 명절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더 긴장해야 하고, 더 숨차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명절에 문을 닫는 무료급식소를 대신해 도시락 급식을 해야 하고, 명절에 더 북적이는 종합지원센터의 상담실과 일시보호센터의 잠자리는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실무자들이 명절에 쉬지 못한다 해도 노숙인들에게 풍성한 한가위 명절이 되면 좋겠지만 노숙인들의 명절은 마음도, 물질도 평소보다 못한 기간이다. 언론에서는 소외계층을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진다는 기사가 명절 때마다 올라오지만 사회적 관심의 테두리 밖에 있는 노숙인 시설에서 그런 풍성함은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거리노숙인들에게 명절은 제대로 된 식사를 찾아 먹는 것조차 기대하기 힘든 기간이다. 올해 설 명절에도 시청에서 들어온 과일 몇 박스가 후원품의 전부였다. 그나마 공동모금회에서 지원되는 예산으로 도시락을 지급해 굶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빈약한 한가위 명절의 전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락과 함께 양말과 같은 선물이나 떡, 과일을 함께 드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배분할 도시락 숫자도 겨우 맞춰야 할 정도로 예산이 줄어들었다.

명절은 노숙인들에게 더 우울해지는 기간이다. 노숙이라는 삶 자체가 우울함을 기본으로 갖게 되기는 하지만 명절에는 특히 더 깊은 상실감과 우울에 빠지게 된다. 형제나 친척이 있어 잠깐 다녀오는 극소수의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명절을 잊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명절기간 내내 아예 밖에 나가지 않고 휴게실에서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식사조차 거르며 PC방이나 만화방을 찾아 밤을 새우기도 한다. 때로는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던 분들이 과음을 하고 실무자들에게 시비를 걸어 실무자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간혹 운이 좋은 분들의 경우 명절에도 일자리를 찾기도 하지만 명절에는 노숙인들이 주로 찾는 일자리인 건설 현장이나 택배 상하차 작업조차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 어떤 분들은 말없이 사라져 명절이 지난 후에나 모습을 드러내고는 한다. 어디서 지냈는지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명절을 기점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공동 제사를 지내고 영화관을 찾아 영화 관람을 하고, 윷놀이나 운동으로 노숙인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 노력해도 그때뿐이다.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노숙인들의 얼굴에서 우울함은 걷어낼 수는 없었다. 노숙인들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족을 구성한 경험이 없는 경우가 과반수를 넘는다. 결국 돌아갈 곳도, 돌아갈 수도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남들에게는 즐거운 명절이 노숙인들에게는 가장 우울한 기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저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기간이다.

필자가 노숙인들과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하루 이상 명절을 쉬게 된 것도 몇 해 전부터다. 하루 이상이라고 해봐야 고작 이틀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혼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간다 하더라도 아침에 공동차례를 지내고 나서 잠깐 다녀오는 정도였다. 물론 지금이야 직원들과 돌아가며 쉴 수 있지만, 지금도 명절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웃으며 고향 다녀오겠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해서였다. 혼자 명절을 지내는 것이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노숙인들게게 우울한 명절이 나에게도 그다지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에게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명절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 명절이 필자에게도 그리 달갑지도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언제쯤이면 노숙인들이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웃으면서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노숙인들이 이번 한가위에도 '한가위만 같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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