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대전대 교수 |
옛날이야기 하나를 해보자. 당 태종의 언행을 기록한 '정관정요'라는 책을 보면 '창업이 더 어려운가? 아니면 수성이 더 어려운가'를 신하들과 묻고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창업이 더 어렵다고 답한 신하 방현령과 수성이 더 어렵다고 답한 신하 위징의 논쟁에서 당태종은 다음과 같은 의사결정으로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방현령은 지난 날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였고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하였소. 그의 말은 창업의 어려움을 몸소 겪은 경험에서 창업이 어렵다고 한 것이오. 그러나 위징은 개국 이후, 나와 함께 천하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나의 마음이 교만하고 방종한 대로 흐르면 국가적 위기와 멸망의 길을 밟을 것이라는 사실을 염려해왔소. 그것은 수성의 어려움을 보았기 때문이오. 현재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되었으니 앞으로 여러 신하들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오늘날 나라를 세우는 창업과 나라를 유지하는 수성은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을 꾸미고 꾸민 일을 유지하는 패러다임만은 변하지 않고 있으니 당 태종의 의사결정은 마음속 깊이 잘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필자는 대학교 창업보육센터를 맡고 있다. 창업보육센터는 창업의 성공가능성을 높이고자 창업자에게 시설 및 장소를 제공하고 경영과 기술분야에 대해 지원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을 말한다. 이런 창업보육의 일은 전제조건이 사업아이디어가 있는 예비창업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아이디어는 연구개발을 통해 탄생하게 되므로 연구개발을 통한 사업아이디어부터 출발해 창업아이디어가 잘 다듬어질수 있도록 창업교육을 진행하고 이렇게 진행된 창업기업을 창업보육을 통해 성공기업, 스타기업을 만들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현실을 살펴보면 12년 기준 총 연구개발 예산은 15조 9000억원 규모로 이중 98.8%에 해당하는 16조 8000억원이 연구개발로 인한 아이디어 창출에 사용되었고, 나머지 1.2%(1956억원)만이 사업화에 사용되었다. 물론, 이 비율이 현재에도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창업에만 신경쓰고 수성에는 나몰라라 하는 행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연구개발과 연구개발로 인한 사업아이디어가 사업화되는 비율은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균형을 유지할 때만이 다양한 분야의 깊이있는 창업 아이디어가 연구개발될 것이고 이를 사업화해 성공기업, 스타기업을 만들 수 있다.
창업보육센터가 바로 이런 딜레마의 중심에 있다. 대학마다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전시도 '창업500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창업의 아이디어가 있는 젊은 대학생을 발굴하고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기까지다. 현실적으로 창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제 창업에 이르기까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 창업기업이 지속적인 기업 활동을 통해 성공기업으로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창업정책은 실질적인 보육으로 이어지지 않기에 벤처 창업기업은 3년 안에 대부분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정부도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올해 정부는 '기업가센터' 사업을 시행하였는데 이 사업은 창업까지만 머물러 있었던 정책을 창업 이후 즉, 실질적 창업보육을 통해 끝까지 창업기업을 지원해 성공기업의 가능성을 높이는 사업이다.
그러나 예산 규모나 지원 정책은 미비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런 사업을 통해 수성에 눈을 뜬 것을 다행이라고 보아야 할지 아니면 여전히 창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불행이라고 보아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당태종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끝맺음을 해보자.
창업이 중요하냐, 수성이 중요하냐의 문제에 있어 창업의 기간은 짧고 수성의 기간은 매우 길다. 시기적절한 타이밍에서 창업과 수성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니 창업기업에 있어 무역규모 세계 10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초라한 성적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른다. 이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창업은 짧고 수성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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