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 |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됐다. 교황은 한국 방문 중 이틀을 우리 충남에서 보냈다. 당진 솔뫼성지와 서산 해미성지에서 펼쳐진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이번 한국 방문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도지사로서 우리 고장 방문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서산과 당진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로 행사가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치게 된 것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교황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100시간도 채 안되지만, 그가 우리 국민들에게 준 기쁨과 감동은 아직도 큰 여운으로 남아있다.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 소박한 의전, 그리고 무엇보다 낮은 자세로 상처받은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교황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감동과 반성, 그리고 새로운 숙제를 남겨주었다.
수많은 국민들이 교황방문으로 큰 위로와 희망의 힘을 얻어 기쁘게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적 깨달음을 주시는 종교지도자 교황께 정치와 정부가 응당 풀어야 할 사회적 갈등 문제조차 위로받아야 하는 현실에 정치인으로서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와 시민사회를 비롯해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교황 방한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첫 번째 교훈일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사회적인 갈등을 미움과 분열이 아닌 화목과 우애의 국가질서로 이끌어 가도록 정치지도자들이 더욱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황이 우리에게 남긴 또 하나의 가르침은 정치란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정의는 강한 자 바르게 하고 약한 자 힘주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는 교황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해답이다. 정치와 행정이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약자의 슬픔을 함께 하며 형제애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사회이며, 이를 위해 정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21세기 새로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끝으로 교황의 방문은 지역적으로 자랑스럽고 훌륭한 역사 유산이 우리 발밑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150여 년 전 우리 충남 땅에서 있었던 천주교 박해의 역사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로만 한정할 수 없다. 그 무수한 희생의 이면에는 조선시대 말 위정척사 사상과 쇄국의 정권적 위기 상황이 연결돼 있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행해졌던 끔찍한 박해의 역사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길을 걸었던 백성들의 슬픈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화와 정의, 용서와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그런 점에서 이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우리가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잘 조성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순례길을 통해서 개인의 마음은 물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노를 사랑과 평화로 이끌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충남과 대한민국의 가장 빛나는 역사문화자산이 아닐까? 충남 순교자의 길은 사랑의 길이고, 마음의 평화와 치유의 길이다. 이 길이 온 국민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잘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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