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로 재직했던 소위, 엘리트 출신이다.
그런 그가 탈북 6개월여만에 재입북을 시도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중국을 방문했다가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탈북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가족이 그리워 막노동에서부터 카드론 대출까지 받으며 재입북을 준비한 사연은 이렇다.
평양시 장경동에서 북한군 군관의 장녀로 태어난 주모(57)씨는 1973년 함경북도 청진의학대를 졸업한 후 1980년부터 2011년까지 함경북도 풍인탄방병원에서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2011년 8월 함경북도 보위부에서 국경통행증을 발부받아 중국을 방문해 길림성에 있는 고모집에 체류하던 중 2008년 탈북한 친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동생의 적극적인 탈북 권유를 거부하다가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소개로 온 남성의 손에 이끌려 14명과 함께 태국을 거쳐 두달여 후 국내에 입국했다.
입국 후에는 두 달간 신분과 탈북경위, 경로 등 탈북과정과 진성 탈북자인지 등에 대한 합동조사를 받고, 북한이탈주민 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적응교육을 수료하고 2012년 2월 퇴소했다. 퇴소 후에는 서울 구로구 탈북아동방과후학교인 삼흥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북한에 머무르는 가족이 그리워 함께 탈북한 A씨와 재입북을 준비했다.
탈출자금 마련을 위해 충남 홍성과 전남 순천 등에서 막노동했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주는 탈북자 지원금과 취업장려금도 모았다. 신용카드사에서 카드론 대출과 현금서비스, 대부업체로부터 신용대출 등을 통해 모두 6240만원을 마련했다. 여권과 중국 관광비자를 발급받고 1200여만원 상당을 중국 화폐로 환전했으며 모두 12회에 걸쳐 3190만원을 탈출자금으로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시망을 포착돼 결국 검찰로 넘겨졌고, 검찰은 ‘북한으로 탈출을 시도한 건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며 국가보안법(잠입ㆍ탈출, 찬양ㆍ고무) 위반 혐의로 주씨를 기소했다.
주씨 측은 “오로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재입북을 시도한 것으로, 국가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없어 탈출 예비ㆍ음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하나원 등에서의 교육과정과 남한 정착과정에서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점과 북한으로의 탈출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잠입ㆍ탈출 혐의는 인정했다.
다만, 김일성 배지와 북한 인공기, 찬양 메모 등의 제작, 소지, 반포 혐의(찬양ㆍ고무)에 대해선 무죄 판단을 내리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했지만, 대전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권희)는 12일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은데다, 북한에 있는 외동딸과 최근 출생한 손녀를 만나기 위해 재입북을 결심한 점’ 등을 참작한 1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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