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채 국립대전현충원장 |
그 이유는 사회주의에 대한 염증과 동ㆍ서독의 생활의 격차 때문이었다. 분단 이후 서독은 정치ㆍ경제적으로 동독과 점점 격차가 생겼고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부흥을 이뤘다. 또한 주변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동구권의 강대국과 화해 외교를 펼쳐 동ㆍ서독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베를린 장벽이 28년 만에 허물어졌고 마침내 독일 통일을 완성했다. 독일은 지금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초일류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60년이 넘도록 한 민족이 서로 다른 이념체제 아래에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독일과는 대조적이고 지난 60년 간 북한의 끊임없는 안보위협 속에 살고 있다.
7ㆍ27 정전협정 이후 북한은 무력도발을 계속 자행하고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고 있는데 2월이후 발사한 미사일이 8종에 250여 발에 이르고 발사지점도 점점 남하하는 등 도발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직시하고 통일 독일을 롤모델로 삼아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첫째로 정전협정일에 대한 인식이 미래지향적으로 변해야 한다. 우리는 7월 27일을 6ㆍ25전쟁이 멈춘 날로만 생각했다. 이 날은 6ㆍ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한 날이며 지난 60년 간의 평화를 보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날이다. 또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날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이 날의 역사적 의미를 새로 패러다임으로 정의하기 위해 유엔군 참전의 날을 제정ㆍ선포했다.
두번째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돌이켜봐야 한다. 정전협정 이후 한미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한반도에서 법적ㆍ제도적으로 안보 보장장치를 마련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정전협정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힘이 됐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한미 양국이 유지해 온 우호적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미래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기반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전쟁영웅이 6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바로 6ㆍ25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장군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수립하였던 군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미국의 에드워드 로우니 장군이었다.
에드워드 로우니 장군은 2차 세계대전, 6ㆍ25전쟁, 베트남전에 참전한 인물로 6ㆍ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과 강원도 영구지구 능선전투 등에서 공을 세우는 등 정전까지 전장에서 활약했다. 또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연합사령부의 전신인 한미 1군단 초대사령관을 지내는 등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특히 그는 올해 6ㆍ25전쟁 참전 회고록인 운명의 1도라는 책을 집필해 한국에서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다.
이 출판기념회에서 로우니 장군은 “한국인들이 현재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할아버지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기억해야 한다”며 당부했고, “6ㆍ25전쟁 당시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점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60년 전 북한의 무력남침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 함께 싸웠던 한미 양국의 두 영웅은 손으로 핸드프린팅하며 우의를 재확인했고, 그들의 손자국은 두 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6ㆍ25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통해 세계 속의 한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굳건한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통일한국의 미래를 함께 열어 갈 동반자적 관계가 될 것임을 두 영웅의 만남을 계기로 국민들의 인식이 하나로 모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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